WTI·브렌트유, 전날 종가 5개월 만에 최고치산유국 감산·지정학적 갈등 탓… 100달러 전망도 ‘수익성 지표’ 정제마진 3월 중순부터 하락세
  • ▲ ⓒ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전 세계적인 석유 공급 위축 우려에 따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 하고 있지만 정유사들은 웃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글로벌 경기 위축 상황에서 유가 상승은 수요 급감이라는 부메랑, 즉 정제마진 하락이 올 수 있어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전날 종가 대비 1.44달러(1.7%) 상승한 배럴당 85.15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도 전날 종가 대비 1.53달러(1.75%) 오른 배럴당 88.92달러에 거래됐다. 모두 종가 기준으로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유가 상승은 산유국들의 감산 기조와 지정학적 갈등이 격화된 영향이다.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 중 한 곳인 러시아는 이달 초 하루 47만1000배럴 추가 감산을 예고하고, 최근에는 석유업체에 감산을 지시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공격으로 중동 지역 확전 위기감도 고조됐다. 동시에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최대 정유소 한 곳을 드론으로 공격하면서 원유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확대됐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유가 오름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100달러 돌파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JP모건은 국제유가 상승 흐름과 관련 “러시아의 감산 조치와 OPEC+가 6월 감산을 연말까지 연장할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브렌트유는 이달 중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한 이후 9월에는 10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2~3주 정도 시차를 두고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유가도 당분간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사의 수익은 좋아진다. 정유사의 원유 매입과 석유제품 출고 사이에는 30~40일 정도의 시차가 발생한다. 석유 제품 가격은 출고 당일의 원유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유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싼 값에 사들인 원유로 생산한 석유 제품을 비싸게 팔 수 있게 된다. 즉 재고 효과(Lagging Margin·래깅 마진) 때문에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 경기침체 우려에 따라 제품 수요가 감소하고 중국이 정유 제품 생산을 확대하면서 정제마진이 하락하고 있어서다. 앞서 올해 2월까지 정유사들은 정제마진 오름세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 바 있다. 

    정제마진이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송비 등의 비용을 빼고 남기는 이익을 뜻한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즉, 정제마진이 4∼5달러 이상이면 수익이, 그 이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 1월과 2월 각각 배럴당 7.8달러, 8.2달러를 기록했지만 지난달 들어 5.9달러로 하락했다. 3월 4째주에는 배럴당 5.4달러로 감소했고, 이달 2일 기준 배럴당 4.8달러까지 내려갔다. 아직까지는 손익분기점 수준에서 머물고 있긴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가가 높은 상태로 지속되는 경우 소비침체로 석유제품 수요 또한 둔화할 수 있어서다.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익 규모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또 다시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유가가 높다 하더라도 수요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다. 또한 고유가가 장기화하는 경우 정유사들의 원유 구입에 추가 부담도 수반된다.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 상황은 단기적으론 재고평가손익을 높여 정유사에 이익일 수 있다”면서도 “급등하는 유가는 결국 소비심리에 영향을 줘 수요가 축소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유사의 경영실적을 견인하는 건 정제마진인데 정제마진은 제품의 수요에 의해 좌우돼 결국 고유가 상황은 장기적으로 보면 타격을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