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저축은행, 'BBB-(부정적)' 강등…'투기등급' 임박올 들어 JT친애저축은행-바로저축은행 이어 3번째 하향영업환경-재무구조 악화에 업권 불확실성 확대…줄 강등 전망금감원, 연체율 등 재무건전성 보완에 고삐…구조조정 분위기도
  • ▲ 페퍼저축은행. 사진=권창회 기자
    ▲ 페퍼저축은행. 사진=권창회 기자
    저축은행업계에 구조조정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자산순위 6위 페퍼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높은 조달금리→수익성 악화→신용도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지배적인 가운데 줄 강등 우려가 퍼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건전성 관리에 고삐를 죄고 있다. 사업장 건전성 분류에서 연체율 기준을 보다 빡빡하게 적용토록 했고, 자본조달계획도 내도록 했다. 일부 저축은행에는 건전성 관리계획까지 요구하면서 업계 구조조정설이 나오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나이스신용평가는 페퍼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9월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춘 이후 등급마저 강등된 것이다.

    나이스신평은 강등 이유로 △조달비용 및 대손비용 증가로 수익성 저하 △고금리 지속 및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자산건전성 저하 △자본적정성 지표가 경쟁사 대비 열악한 수준 등을 꼽았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 낮아지면 등급전망은 '안정적'으로 바뀌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실적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부정적' 꼬리표를 달았다. 투기등급(BB급)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음을 의미한다. 

    저축은행의 경우 은행이나 카드사처럼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

    문제는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졌을 때다. 투기등급이 되면 퇴직연금을 운용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반납해야 한다. 퇴직연금은 저축은행 총 정기예금의 3분의 1에 달하는 만큼 여기서 돈줄이 막히면 유동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업계의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이유다. 

    ◇부동산PF 부실 직격타…줄강등 우려 확산

    업계에서는 앞서 자산 기준 15위 JT친애저축은행과 23위 바로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이 떨어진 만큼 페퍼저축은행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달 한국기업평가는 일본계 금융회사 J트러스트그룹의 'JT친애저축'의 신용등급을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로 하향 조정했으며 9일에는 바로저축은행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안정적)'로 내려잡았다.

    신용평가업계는 부동산PF 부실로 저축은행업계가 직격타를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제2금융권 업권별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 결과 경착륙 상황에서 저축은행의 부동산PF 손실률(충당금 적립 전 영업이익 잠식률)이 100%에 근접한다고 밝혔다. 자본비율 역량과 관련해서도 일부 저축은행은 금융감독원의 권고비율인 11%에 근접하거나 밑돌 수 있단 분석이다.

    특히 저축은행업권이 취급하는 부동산PF는 질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분양 위험이 낮은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비중이 작고 대부분(80~90%)이 기타 주거 및 비주거에 쏠려 있다. 저축은행이 참여한 본PF 시공사 및 책준기관 신용등급 구성 중 70% 정도가 BB급 이하이며 대부분 무등급으로 집계됐다.

    실제 저축은행의 영업환경과 재무구조는 가파르게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저축은행업계는 5000억원대의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9년 만에 적자를 냈다. 국내 저축은행 79곳 중 절반이 넘는 41곳이 마이너스다.

    경기 침체로 연체율(6.55%)과 고정이하여신비율(7.72%)은 전년대비 각각 3.14%p와 3.64%p 상승하면서 재무구조도 악화했다. 특히 연체율은 2011년 저축은행사태(5.8%p)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으며 올해 1분기 연체율도 지난해 말보다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신평사들이 지난해 저축은행 업황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했고, 올해는 수익성·건전성 지표들이 실제로 악화하자 전망뿐만 아니라 등급까지 낮춘 것 같다"며 "올 한해도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저축은행들도 등급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 저축은행. ⓒ연합뉴스
    ▲ 저축은행. ⓒ연합뉴스
    ◇건전성 관리계획 제출 요구…업권 구조조정 포석設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재무건전성 보완에 고삐를 죄고 있다.

    우선 자율협약이 끝난 부동산PF 사업장의 건전성 분류를 보수적으로 지시했다. 협약기간에 이자를 일부만 미납해도 전체 협약기간을 연체기간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저축은행이 건전성을 분류할 때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못 받은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연체금을 일부 상환하더라도 연체상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 협약이 시작되기 전부터 연체가 이어지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금감원의 기본 입장"이라며 "협약조건을 다 완수한 경우에만 아주 예외적으로 연체기간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권고치인 11%(자산 1조원 이상, 1조원 미만은 10%)를 넘도록 자본적정성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형 저축은행 중에서는 KB저축은행이 10.7%로 권고치를 밑돌았고, 페퍼저축은행 11.0%와 상상인저축은행 11.2% 등은 간신히 넘어섰다. 1분기에는 대규모 손실로 권고치에 해당하는 저축은행이 15개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일부 저축은행에는 비상시 자본조달계획 외에도 재무구조 관리방안 등 건전성 관리계획 제출을 주문했다. 이 같은 요구는 전체 79개 저축은행 중에서도 자산순위나 자본조달력이 낮은 중소형사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당국이 중소형사를 두고 업권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같은 사람이 영업권이 다른 비수도권 저축은행을 최대 4개까지 소유하거나 지배할 수 있도록 저축은행 M&A 기준을 고쳤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형 저축은행을 큰 회사로 편입하거나 서로 뭉치게 만들어 경쟁력을 키우도록 유도한 것이다.

    B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문제가 심각한 저축은행 대여섯곳을 정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며 "최근 업계 분위기를 보면 중소형사는 물론, 대형사까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C저축은행 관계자도 "이미 모기업에서 증자를 받아 BIS비율 규제 수준을 넉넉하게 충족하는 저축은행이 많은데, 일부를 상대로 또 자본조달계획을 요구했다는 것은 이참에 개인 대주주 소유의 중소형사를 정리하겠다는 당국의 셈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편 저축은행의 매각도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말 상상인저축은행이 매물로 나온 뒤 우리금융지주가 인수를 검토했으나 인수 의사를 철회했고, 2022년부터 매물로 나온 △HB저축은행 △애큐온저축은행 △OSB저축은행은 아직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앞으로도 어려운 생존 싸움을 벌여야 할 업황을 고려할 때 저축은행에 대한 메리트가 부족하다는 평이다.

    C 저축은행 관계자는 "업무 확장성이나 성장 가능성이 낮은 저축은행을 이 시점에 적극적으로 매수하려는 기업을 만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