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임기 종료 앞두고 '연금 정국' 가열野 "모수개혁 먼저" vs 與 "구조개혁 빠진 개악"민주당 주장은 졸속 대책일 뿐 … 기금 고갈 못 막아22대 국회 구조개혁 최우선 착수 대국민 약속해야
  • ▲ 국민연금.ⓒ뉴시스
    ▲ 국민연금.ⓒ뉴시스
    제21대 국회 임기 종료가 임박한 가운데 정치권이 뒤늦게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두고 달아오르고 있다. 야당은 이번 국회 내에서 모수(母數)개혁(연금의 변수인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을 한 뒤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추진하자는 견해다. 반면 여당과 대통령실은 구조개혁이 빠진 모수 조정은 졸속 개혁에 불과한 만큼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속도감 있게 처리하자는 태도다.

    이번 '연금 정국'은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대 국회 임기 안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하면서 불거졌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여당이 제시한 소득대체율(받는 돈) 44%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에서 여당은 구조개혁을 전제로 보험료율(내는 돈)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4%로 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안은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5%'였다.

    보험료율에는 여야 간 이견이 없는 가운데 소득대체율만 1%포인트(p) 차이 나자, 그동안 미루기만 해온 국민연금 개혁의 첫 단추를 21대 국회에서 꿰자는 의견이 제기됐는데 민주당이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한 셈이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지난 26일 "2007년 이후 17년간 못 한 연금 개혁을 하는 의의가 있다"며 21대 국회에서 모수 개혁을 하자는 민주당 주장에 힘을 보탰다.

    반면 여당과 대통령실은 구조개혁 없는 모수개혁은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견해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2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쟁과 시간에 쫓긴 어설픈 개혁보다 국민적 공감을 얻어 22대 첫 정기국회에서 최우선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모수 개혁과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할 여·야·정 협의체를 꾸리고, 국회 연금특위를 22대 국회에서 다시 구성하자고 했다.
  • ▲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모습.ⓒ뉴시스
    ▲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모습.ⓒ뉴시스
    여당이 얼핏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야당의 국민연금 개혁 의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은 연금 개혁을 여당과 대통령실이 지연시킨다는 프레임으로 정부에 대한 반발심리를 자극한 뒤 나중에는 특유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나랏빚을 더 내 연금을 더 많이 받게 해주겠다고 돌변할 게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추 원내대표는 "지난 세월 연금 개혁에 손을 놓고 있던 민주당이 갑자기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3일 앞둔 시점에서 합의가 안 된 연금 개혁을 졸속으로 추진하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합의하지 못하는 건 단순히 (소득대체율) 1%p 문제가 아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등 구조개혁 문제를 따로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수 개혁만 하는 것은)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며 "연금 개혁의 목적은 청년 세대에 '빚 폭탄'을 떠넘기지 말자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43%든, 45%든 국민연금 완전 고갈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구조 개혁을 외면해 왔다"며 "연금 개혁처럼 어려운 개혁을 어느 한 정권이 5년 임기 내에 2번 하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민주당의 선(先) 모수개혁, 후(後) 구조 개혁 주장을 '얕은 속임수'라고 꼬집었다.

    애초 민주당은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대표단이 설문조사 결과 '더 내고 더 받는' 소득보장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을 더 선호하자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며 이를 밀어붙일 태세였다. 하지만 소득보장안이 기금 고갈 시기를 2055년에서 2061년으로 고작 6년 늦출 뿐 청년 세대에 더 큰 부담을 지운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한 발 물러났다. 지속 가능한 연금 개혁의 본질을 따지기보다는 당장의 인기영합적인 표심에 정책의 향방이 흔들리는 셈이다.

    연금 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기금 고갈을 앞두고 개혁의 속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개혁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구조개혁을 외면한 모수개혁 주장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기금 고갈 시점을 다시 찾아오고 그때 가서 또다시 모수 조정이 쟁점화하면 세대 간 갈등만 부채질할 뿐이다.

    또한 고령화 가속과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 하락을 반영한 새 장래인구추계를 재정전망에 반영하는 작업과 신(新)연금 도입이나 소득비례연금(소득 재분배 기능이 없는 대신 '더 내고 더 받는' 장기저축형연금) 전환 등 연금 개혁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도 더 필요하다. 오는 29일 임기가 종료되는 21대 국회 내에서 졸속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민주당이 연금 구조개혁에 진심이라면 모수 개혁 후 연금 개혁의 동력이 사라지기 전 구조개혁에 착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수는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에 움직이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언제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함정이 있다. 국민연금의 구조개혁이 늦춰질수록 그 피해는 젊은 세대가 보게 된다. 민주당은 임기 종료가 이틀 밖에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생색을 내기보다는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 논의를 어떻게 서두를지에 대한 대국민 약속을 내놓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