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HBM·GDDR·LPDDR 수요 확대… 제품·고객사 동시 다변화엔비디아 ‘루빈’ 일정 지연에도 2분기 HBM4 초기 양산 전망SK 독주 속 삼성 수율 개선·제품군 확장으로 '반전' 가능성
  • ▲ SK하이닉스의 HBM4 제품. ⓒ이가영 기자
    ▲ SK하이닉스의 HBM4 제품. ⓒ이가영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 준비를 마무리하며 내년 인공지능(AI) 칩 시장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HBM 중심이던 올해와 달리 내년에는 저전력D램(LPDDR), 그래픽D램(GDDR) 등 제품군 다변화와 구글·메타 등 고객사의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메모리 업계 전반의 경쟁 구도가 급격히 확전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루빈’ GPU에 탑재될 HBM4의 공급을 위해 필요한 성능 검증과 생산 준비를 사실상 완료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사내 최종 성능 테스트(PRA)를 통과해 출하 직전 단계까지 도달했으며, SK하이닉스는 9월 개발 완료 후 연내 초기 출하를 시작할 계획이다.

    양사는 현재는 엔비디아의 공식 승인과 주문 확정을 기다리고 있다. 내부 준비가 마무리된 만큼 엔비디아가 일정만 확정하면 즉시 공급에 나설 수 있는 단계다. 

    HBM4는 내년 출시될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루빈’ 시리즈에 적용되는 주력 메모리다. 기본 모델에는 HBM4 8개가, 2027년 선보일 상위 버전 ‘루빈 울트라’에는 12개가 탑재된다. 

    루빈은 당초 내년 2분기 공개가 목표였으나 설계 조정과 성능 관련 검토가 이어지면서 일정이 미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내년 하반기 출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통상 메모리가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한 개 분기 정도 먼저 양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HBM4는 내년 2분기 중 초기 양산에 돌입할 것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올해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확고한 우위를 보였다. 증권가에 따르면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은 60.8%로, 삼성전자(17.2%), 마이크론(22.0%)을 크게 앞섰다. 다만 내년 HBM4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점유율 30%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며 추격전이 한층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내년 AI 메모리 시장에서는 HBM 외에도 수요가 다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GPU 구조 고도화와 AI 서버의 용도 분화가 맞물리며 GDDR·LPDDR 등 다양한 메모리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내년 하반기 출시할 계획인 추론 특화 GPU ‘루빈 CPX’에 탑재되는 GDDR7을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GDDR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루빈 CPX는 메인 가속기 ‘베라 루빈’과 조합해 추론 서버 운영 비용을 낮추는 구조여서, 시장 확대에 따라 GDDR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LPDDR 시장에서도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CPU ‘베라’에 결합되는 메모리 모듈 ‘소캠(SOCAMM)’에 LPDDR5X 기반 제품을 적용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내년 공급 물량을 조율 중이며, LPDDR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내년 CES에서 차세대 LPDDR6도 공개해 AI·모바일·온디바이스 메모리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고객사 측면에서도 시장 확장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간 AI 가속기용 메모리는 엔비디아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지만, 최근 글로벌 빅테크들이 자체 AI 칩 개발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일례로 구글은 차세대 AI 칩인 텐서처리장치(TPU)에 HBM을 채택하며 자체 AI 서버 아키텍처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제미나이3의 성능이 크게 개선되자 메타가 차세대 AI 인프라에 구글의 신규 TPU 도입을 검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AI 서비스 사업자가 엔비디아 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삼성전자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한다. 그동안 AI 서버 시장은 엔비디아가 주도했고, 엔비디아의 초기 HBM4 물량 역시 SK하이닉스 중심으로 배정될 가능성이 높아 공급 선택 폭이 제한적이었다. 

    반면 구글 등 비(非)엔비디아 기반의 AI 칩 수요가 커지면, 이들 기업은 자연스럽게 엔비디아와 무관하게 HBM을 조달해야 한다. SK하이닉스의 HBM 생산능력이 이미 엔비디아향 중심으로 묶여 있는 만큼, 비엔비디아 칩 업체들은 사실상 삼성전자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AI 서버의 구조가 학습용과 추론용으로 분화되면서 메모리 규격이 다양해진 점도 경쟁 심화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학습에는 고대역폭의 HBM이 필수지만, 추론·온디바이스 AI에서는 전력 효율성을 중시하는 GDDR·LPDDR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는 HBM뿐 아니라 GDDR, LPDDR까지 수요가 동시에 커지면서 시장이 단일 제품 중심에서 다층 경쟁 구도로 이동하고 있다”며 “삼성전자도 HBM4부터는 최근 수율 확보와 성능 검증 등에 속도를 내고 있어 판도가 바뀌는 구간에서 반전 기회를 만들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