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지출 세계 2위인데 생산성증가율은 연평균 0.5%한은 "혁신 필요하지만…기초연구 부족에 혁신자금 조달난 겹쳐"기초연구 강화하면 성장률 0.1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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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혁신을 통한 생산성 개선이 없다면 한국 경제는 10여년 후 뒷걸음칠 거란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특히 초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심화로 생산성증가율까지 0%대로 추락한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혁신에 성공하고 가라앉는 경제를 구하려면 기업의 기초연구 지출을 늘리고 벤처캐피탈의 혁신자금 공급 기능을 고쳐야 한다는 게 한국은행의 조언이다. 

    ◇ 기업 R&D 지출‧특허출원 건수 세계 2위인데…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0.5%

    한은 경제연구원은 10일 공식 블로그에 올린 '연구·개발(R&D) 세계 2위 우리나라, 생산성은 제자리' 보고서에서 "출산율의 극적 반등, 생산성의 큰 폭 개선 등 획기적 변화가 없을 경우 우리 경제는 2040년대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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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미증유의 초저출산과 고령화가 주요인이다. 

    우리나라 총인구(통계청 장래인구추계 기준)가 2020년 5184만명을 정점으로 2040년 5006만명, 2070년 3718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초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훼손을 만회할 만한 경제 전반의 혁신마저 부족하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R&D 지출 규모(2022년 기준 GDP의 4.1%)와 미국 내 특허출원 건수(2020년 기준 국가별 비중 7.6%)의 세계 순위는 각 2위, 4위에 이른다.

    한은 분석 결과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 0.5%까지 크게 낮아졌다.

    게다가 미국에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혁신 실적이 우수한 '혁신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같은 기간 연평균 8.2%에서 1.3%로 떨어졌다. 

    ◇ 대기업 혁신 양 늘었지만 질 떨어져… 혁신 신생기업 진입 감소 

    이처럼 기업의 혁신활동지표는 빠르게 개선됐으나 2010년대 이후 생산성 증가세가 둔화된 이유는 우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혁신 실적의 '양'만 늘고 '질'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 

    예를 들어 대기업(종업원 수 상위 5% 기업)은 전체 R&D 지출 증가를 주도하고 특허출원 건수도 크게 늘렸지만, 생산성과 직결된 특허 피인용 건수 등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눈에 띄게 감소한 뒤 이전 추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혁신자금 조달이 어렵고 혁신 잠재력을 갖춘 신생기업의 진입까지 줄면서 2010년대 이전 가팔랐던 생산성 증가세가 꺾인 상태다.

    저업력 중소기업 중 설립 후 8년 안에 미국 특허를 출원한 신생기업의 비중도 2010년대 들어 계속 떨어져 10%를 밑돌고 있다.

    이동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실장은 “2010년 혁신기업의 경우 대기업을 중심으로 혁신실적의 양은 늘었으나 질이 낮아진 점, 중소기업의 혁신자금조달 어려움이 가중된 점, 혁신잠재력을 갖춘 신생기업의 진입이 감소한 점 등이 문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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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초연구 강화하면 성장률 0.18%p↑…자금공급 개선‧신생기업 확대시 0.07%p↑

    한국 기업 혁신의 질이 떨어진 데는 기초연구 지출 비중 축소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의 기초연구 지출 비중은 오히려 2010년 14%에서 2021년 11%로 줄었다. 기초연구는 혁신의 질을 좌우한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업은 글로벌 기술 경쟁 격화,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단기 성과 추구 성향, 혁신 비용 증가 등으로 제품 상용화를 위한 응용연구에 집중하고 기초연구 비중은 줄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의 혁신자금 조달난은 2010년대 들어 벤처캐피탈에 대한 기업의 접근성 악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가·기업 패널 분석 등에 따르면 벤처캐피탈 접근성이 높을수록 혁신실적이 개선되는데,  2010년대 들어 벤처캐피탈 접근성이 낮아진 가운데 투자회수시장의 발전은 더디고 민간의 역할도 부족한 상황이다. 

    신생기업 진입 감소의 원인으로는 '창조적 파괴'를 주도할 혁신 창업가의 부족 현상이 꼽혔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미국 선행연구 결과 대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창업가는 주로 학창 시절 인지능력이 우수한 동시에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똑똑한 이단아"라며 "하지만 한국의 경우 똑똑한 이단아는 창업보다 취업을 선호하고, 그 결과 시가총액 상위를 여전히 대부분 1990년대 이전 설립된 제조업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기초연구 강화 △벤처캐피탈 혁신자금 공급 기능 개선 △혁신 창업가 육성을 위한 사회 여건 조성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한은 경제연구원은 "구조모형을 이용해 정책 시나리오별 효과를 추산한 결과, 연구비 지원과 산학협력 확대 등으로 기초 연구가 강화되면 경제성장률은 0.18%포인트(p) 높아질 수 있다"며 "자금공급 여건 개선과 신생기업 진입 확대로 혁신기업 육성이 진전돼도 성장률이 0.07%p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우리나라 M&A 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킨 상황에서 벤처캐피탈 접근성을 미국 수준으로 높일 경우 우리 기업의 특허 출원건수와 피인용건수를 0.74%, 0.58% 증가시킬 수 있다”면서 "실패에 따른 위험을 줄여주고 고수익·위험 혁신 활동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똑똑한 이단아의 창업 도전을 격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