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상장기업 153社 조사44% "M&A 계획 재검토", 9% "철회할 것"소송 남발로 기업활동 제약… 오히려 밸류업 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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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사(경영진)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를 넘어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움직임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인수합병(M&A)과 같은 기업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지연될 수 있어 밸류업(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1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상장기업 153개사를 대상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시 M&A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M&A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거나 ‘철회·취소’하겠다는 기업이 절반 이상(52.9%)으로 집계됐다. M&A를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답변은 45.1%, ‘추진계획 없음’은 2.0%로 나타났다.특히 응답기업의 66.1%는 상법 개정시 해당 기업은 물론 국내기업 전체의 M&A 모멘텀을 저해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향 없음’ 응답은 33.9%에 그쳤다.22대 국회 개원과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현행법상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규정이 국내 증시 저평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주주 피해 발생시 이사의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다.그러나 재계에서는 이사에 대한 소송이 빗발쳐 기업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역시 법 개정이 선언적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실제 기업들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로 이사의 책임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제도가 도입되면 ‘주주대표소송과 배임죄 처벌 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61.3%에 달했다. 현재 형법상 배임죄 등의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이사의 책임까지 가중되면 장기적 관점의 모험투자 등을 꺼리게 돼 오히려 밸류업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응답기업의 84.9%는 배임죄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응답했으며, 24.8%는 최근 5년간 불명확한 배임죄 기준 때문에 의사결정에 애로를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연간 업무상 배임죄 신고건수는 2022년 2177건 등 해마다 2000건 내외로 발생했으며, 기업인들은 최선의 결정을 내려도 이후 결과가 좋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될 우려가 있다.이외에도 ‘회사와 주주의 이익 구분 불가(61.3%)’, ‘주주간 이견시 의사결정 어려움(59.7%)’ 등 실무적 혼선을 우려하는 기업도 많았다.대한상의 관계자는 “주주 중에는 지배주주도 포함되고, 비지배주주간에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의문”이라며 “면밀한 검토 없이 도입하면 M&A나 신규투자는 위축시키고 경영의 불확실성만 가중하는 결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한편 이번 조사에 응한 상장사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의 주주보호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62.1%가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하고 49.7%가 전자주주총회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26.1%는 법정 기준보다 높은 비중의 사외이사를 포함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또 이사회가 지배주주에 대한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안건 상정 전에 쟁점을 조정하기 때문(66.0%)’이라거나 ‘반대 이사가 있는 경우 표결하지 않고 철회 또는 조정 후 재상정(28.1%)’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사외이사 풀(pool)이 적고 안건에 반대할 만큼 전문성 부족(46.4%)’ 등의 의견도 있었다.기업들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규제보다 자유로운 기업경영활동을 보장해주는 법제도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구체적으로는 ‘배임죄 명확화(67.6%)’, 합리적이고 성실한 경영판단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 존중 원칙 명문화(45.9%)’, ‘밸류업 우수기업 인센티브 도입(40.5%)’, ‘상속세 인하(27.0%)’ 등 의견이 나왔다.송승혁 대한상의 금융산업팀장은 “경영진의 어떤 의사결정이 회사에는 이익이 되고 주주에게는 손해가 되는지는 기업이 사전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기업들도 주주보호를 위한 많은 제도적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만큼 섣불리 규제를 강화해 경영의 불확실성을 확대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