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합병 배경, 기대효과 상세하게 담아라"개인·외인 주주들 반발에 이례적 개입두산 "최대한 빨리 정정신고 내겠다"
  •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에 제동이 걸렸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이 투자자와 주주를 위한 정보 제공을 보완할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두산 측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지적받은 내용을 수정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전날 두산로보틱스 합병,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구조개편과 관련한 배경, 주주가치에 대한 결정 내용,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은 점이 이유로 지목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신고서 내용이 추상적인 만큼 구조개편의 목적과 효과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분할 합병의 배경과 절차는 물론 이로 인한 수익성, 재무 안정성 등을 구체적으로 담으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이 대기업의 계열사 간 합병, 분할 등 자본거래의 목적과 기대 효과 등을 상세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건 드문 조치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이례적 조치를 두고 커지고 있는 시장의 논란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소액주주와 자본시장에서는 개편 핵심인 ‘분할합병 비율’을 놓고 앞다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의 재편안은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사업 부문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에 흡수 합병하고, 현재 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도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바꾼다는 게 골자다. 이 과정에서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들은 자신들의 주식이 적자 기업인 로보틱스 주식으로 바꾸게 돼 불이익을 보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지분가치를 결정하는 밥캣 주가는 저평가된 반면 로보틱스 주가는 지나치게 고평가돼있다는 게 이유다. 두산밥캣 1주당 주주들이 받을 수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주식은 0.63주다. 그러나 두 기업의 매출 수준은 지난해 기준 183배 이상 차이가 난다. 또한 ㈜두산은 특별비용 없이 밥캣에 대한 실질 지배력을 13.8%에서 42%로 확대하게 된다. 즉, 알짜 회사로 평가받는 밥캣 지배력이 강화되는 지배주주인 ㈜두산에게만 좋은 사업 재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임죄 혐의가 있어서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고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손해가 우려되는데도 금감원이 신고서를 수리한다면 금융 당국의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 의원 주장에 따르면 기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을 갖고 있는 소액주주의 경우 주식 100주당 27만1000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변호사) 또한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들이 받게 될 로보틱스 주식이 초고평가 상태지만 주가 하락 위험 등이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며 “부실 기재가 자본시장법상 증권신고서의 중요한 사항 누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는 외국인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재편안 발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두산그룹 관련 계열사 주식 팔기에 나섰다. 두산이 외국계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밥캣 자사주 소각 정책을 내놓는 등 노력에도 투심을 회복하진 못했다는 평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2일부터 22일까지 7거래일간 외국인들은 밥캣 주식 약 1942억원, 에너빌리티주식 422억원, 로보틱스 154억원 등 2500억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두산그룹은 전체 증권신고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두산로보틱스가 3개월 이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증권신고서는 철회된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신고서가 수리되더라도 합병까지는 갈 길이 멀다.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민연금의 찬반여부도 변수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말 기준 에너빌리티 6.78%, 밥캣 6.97%, ㈜두산 8.75% 등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로보틱스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국민연금 또한 지분가치 훼손이 우려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정정요구 내용 가운데 합병비율에 관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최대한 빨리 수정해 정정신고서에 반영할 예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