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서 유리한 고지 '사모펀드=기업 사냥꾼' 논란 여전…경영권 탈취 우려 커져적자에도 배당·무리한 비용절감·오버행 이슈 부담사모펀드 공격적 투자금 회수에 기업 근간 흔들려
  • ▲ (왼쪽부터)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김병주 MBK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 (왼쪽부터)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김병주 MBK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는 그간 경영권 분쟁 조연으로 등장하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주연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사례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대결 구도가 MBK 측으로 기운 가운데 업계에선 알짜 기업들을 겨냥한 사모펀드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에선 여전히 M&A가 '기업 약탈'이란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인 만큼 시장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풍과 MBK는 지난 14일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끝내고 지분 5.34%를 추가로 확보했다. 영풍-MBK는 기존 지분에 더해 총 38% 이상 지분을 갖게 됐다. 의결권 기준으로는 46% 이상으로 과반에 육박한다. 

    MBK와 영풍은 이달 중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위한 절차에 돌입, 공개매수를 통한 지분 우위를 바탕으로 주총 속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9월 13일 MBK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과 주요 계열사 영풍정밀 주식 공개매수를 발표했다. 75년간 공동경영을 이어온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 간 경영권 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것이다. 

    MBK는 고려아연 문제와의 관계에서 지배구조와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공격적인 M&A를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시장 일각에선 MBK의 움직임을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로 본다. 

    M&A는 회사가 다른 회사를 합병하거나 인수하기 위해 내리는 전략적 결정이다. M&A를 통해 기업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도 있지만 국내에선 'M&A = 기업 약탈'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모펀드의 적대적 M&A가 단기 수익에만 집착한 채 사회와 경제에 해를 끼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데일리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고려아연 사태 관련 국민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8.9%는 MBK 공개매수의 적대적 M&A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22.8%였으며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8.3%로 나타났다.

    특히나 고려아연 사례는 오너 1, 2세대와 달리 기업 장악력이 떨어지는 대기업 오너 3세 시대에 사모펀드의 존재감을 알리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의 조연으로 등장하며 재벌과 공생해온 사모펀드가 막대한 자본력을 통해 경영권 공격으로 '기업 사냥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내실 있는 좋은 기업이 사모펀드에 휘둘리고 있다는 우려 속에 재계가 고려아연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적자에도 배당·무리한 비용절감…사모펀드 공격적 투자금 회수에 기업 근간 흔들

    인수 후 기업가치를 높여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게 사모펀드의 주된 목적인 만큼 전문가들은 사모펀드가 기업 인수 후 무리하게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을 우려한다.

    사모펀드의 투자금 회수 전략 중 하나가 회사 이익 발생 시 주주에게 나눠주는 분배금(배당)이다. 출자자에게 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사모펀드 입장에서 배당은 투자금을 중간 회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투자금 회수를 위한 고배당 정책을 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IMM프라이빗에쿼티(PE)를 최대주주로 둔 에이블씨엔씨와 한샘을 꼽는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10월 330억원 규모 중간배당을 실시한 데 이어 기말 배당으로 41억원을 집행했다. 이는 지난해 거둔 순이익(61억원)의 6배를 웃돌았다. 지난 2021년 IMM PE에 인수된 한샘은 2022년 132억원, 2023년 747억원 규모 배당을 실시했다. 문제는 한샘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실적이 꺾여 2022년 713억원 순손실에 이어 지난해에도 622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배당 규모를 대폭 확대함에 따라 지난해 주당 배당금은 4500원으로 전년(800원) 대비 5배 넘게 증가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최대주주인 케이카도 지난 2년간 매 분기 91억원씩, 연간 365억원 규모 배당을 실시했다. 케이카는 지난 2022년 304억원, 2023년 28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 연속 배당 규모는 벌어들인 순이익을 웃돈다.

    이처럼 보유 현금을 무리하게 배당하는 건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인수 금융에 대한 이자 때문에 배당을 필요 이상으로 하면 기업의 현금흐름이 악화돼 개인 투자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등 악영향이 많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모펀드가 기업이 가치 대비 낮은 가격의 기업을 인수, 가치 제고를 통해 더 비싼 값에 매각하는 만큼 기업 인수 후 해당 기업의 실적을 무리하게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점 역시 우려의 지점이다. 주로 실적 개선을 위해 비용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등 현금흐름을 극대화하는데, 과도한 구조 조정과 원가 절감 등 비용 줄이기가 지나칠 경우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앞서 ING생명(현 신한라이프)와 홈플러스 인수에 나섰던 MBK는 10년 이상 장기적 경영과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MBK는 ING생명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6개월여 만에 임원 32명 가운데 18명을 내보냈고 평직원의 30%에 달하는 270명 감축을 목표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홈플러스는 MBK에 인수된 지 8년 만에 직원 1만여명이 회사를 나갔다.

    고려아연 측은 "사모펀드의 경영 방식 등을 고려하면 기술 유출과 해외 매각 가능성은 물론 기업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단기 실적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때문에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 연구개발 투자 축소 등의 부작용 등으로 논란이 지속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우려했다.

    주주 입장에선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이슈도 부담이다. 사모펀드가 최대주주 지분을 인수하지 않고 소수 지분을 획득하는 형태로 투자한 경우에는 추후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로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블록딜은 규모와 할인율, 지분 매각 의도 등에 따라 강도는 다르지만 통상 주가에 악재로 인식된다. 주식 투자 시 사모펀드가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리면 오버행 이슈가 있다고 보고 애당초 투자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제 2차 전지의 핵심소재인 전구체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2대 주주인 블루런벤처스(BRV)의 블록딜 소식이 있을 때마다 주가가 출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최대주주 지분을 인수한 사모펀드는 기업 전략을 원활하게 펼치기 위해 이사회 장악을 통한 확실한 경영권 행사를 선호하는 만큼 상장폐지 가능성도 상당하다. 실제 초기부터 상장폐지를 전제로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에만 락앤락, 제이시스메디칼, 커넥트웨이브, 쌍용C&E, 비즈니스온 등 사모펀드를 최대주주로 둔 다수 기업이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기업가치, 사회에 대한 책무 등이 전제되는 것이 아닌 철저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이익만을 추구한다"면서 "이들이 엑시트(투자 회수)한 이후 기업 가치에 대해 장담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