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별 비상 대응 체계 가동 … 리스크 헤징 총력전외환·금융시장 불안 → 실물경제 전이 우려반도체-원전-조선-방산 등 비상등트럼프 2기 출범 → 글로벌 무역 룰 재편 → 韓 컨트롤타워 부재
  •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에서 비롯된 어수선한 정국이 끝내 탄핵으로 번졌다.

    경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다다른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비상상황속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리스크 헤징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14일 국회가 탄핵안 소추안을 가결함에 따라 정국은 향후 3~4개월 이상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일 전망이다. 

    앞서 계엄 여파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으로 실물경제에 급격한 파장이 불가피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원/달러 환율로 인한 기업의 부담이다. 이미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된 가운데 1500원대까지 점치는 분위기가 많다.

    실제 8년 전인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발의부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이르는 3달 간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 초반에서 1200원대 이상으로 100원 가까운 변동폭을 보였다. 환율은 헌재 결정일 반짝 오른 후 겨우 내림세를 찾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도 환율은 1150원대에서 1200원대까지 널뛰기를 이어갔다.
  • 주요 기업들은 주말을 반납한 채 요동치는 정국 변동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환율·금리 등 금융 변동성은 시간이 지나면 안정된다 하더라도, 국정공백과 혼란은 기업들의 의사결정을 제약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극심한 경기부진 속에서도 선방하던 원전, 조선, 방산 등 일부 산업들은 정부와 손발을 맞춰온 곳들"이라며 "국정동력이 상실되면 다 잡은 고기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우리나라의 신용등급도 위태롭다. 3대 국제신용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최근 계엄사태에 대해 "취약한 경제성장 전망과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정치 갈등은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고 결국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경제강국 한국이 '코리아디스카운트'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원인은 다름아닌 정국 불안"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탄핵의 강을 건넜던 2016년 연말을 돌아보면 당시 기업들은 모든 대외활동을 일순간 셧다운했었다. 연말연시 붐비던 경제계 모임과 행사들은 모두 일정을 잡지 못하고 표류했고, 정부가 주도하는 일정들도 요식행위에 그쳤다.

    당시 대한상의가 마련한 2017 경제계 신년인사회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석했고, 주요 기업총수들은 모두 참석을 미뤘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야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청문회를 앞세워 재계 총수들에 대한 압박수위를 한층 높였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들어 정재계 밀착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적지만, 정국이 뒤틀릴수록 기업들은 납작 엎드려 꼬투리를 만들지 않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탄핵 시점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벌어진 것도 8년 전 악몽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기시감이다. 글로벌 무역 룰(rule)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우리만 컨트럴타워 부재 속에서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다.

    4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2.0에서 한국이 주요국들과 풀어내야 할 숙제는 8년 전보다 훨씬 많아보인다"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끝없는 정치적 갈등은 기업들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결과를 낳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