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보 대위변제 1.4조·기업 연체율 0.9%·부실채권 3.5조보증·대출·구조조정 금융으로 이어지는 중소기업 부실의 흐름성장률 1%대 경제 속 중소기업 금융의 부담 전이연장과 리파이낸싱의 한계, 정책금융이 떠안은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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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조 4000억원, 0.9%, 3조 5000억원.'

    숫자들이 동시에 경고음을 내고 있다. 각각 지난해 기술보증기금의 대위변제 순증액, IBK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중소기업 부실채권 규모다. 개별 지표로 보면 관리 가능한 범주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 줄로 묶이는 순간 그림은 달라진다. 중소기업의 상환 부담이 보증과 대출을 거쳐 구조조정 금융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는 신호다.

    가장 무거운 숫자는 1조 4258억원이다. 지난해 기술보증기금의 중소·벤처기업 일반보증 대위변제 순증액이다. 대위변제는 2021년 4904억원, 2022년 4959억원 수준이었지만 2023년 9567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조 31억원)을 넘어섰다. 대위변제율도 2021~2022년 1.87% 수준에서 지난해 4.76%까지 뛰었다. 보증이 '안전판'이 아니라 빠르게 소모되는 '완충재'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책은행의 지표도 가볍지 않다. IBK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기준 0.89%로 집계됐다.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던 2024년 3분기(1.00%)보다는 소폭 낮아졌지만, 1년 전보다 0.09%포인트 높다. 특히 기업 부문 연체율은 0.91%로, 건설업(1.71%)과 부동산·임대업(0.87%)에서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연체가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중소기업 부실채권 규모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산업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중소기업 부실채권은 2023년 3분기 2조 4000억원에서 2024년 3분기 3조 3000억원, 2025년 3분기에는 3조 5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연체와 부실이 은행권 내부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구조조정 금융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보증기관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정책금융의 부담은 더 분명해진다. 기보가 기술기업과 벤처기업의 위험을 떠안고 있다면, 신용보증기금은 일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실을 흡수하는 축이다. 여기에 지역신용보증재단까지 포함하면 보증기관 전반에서 대위변제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지역신보의 일반보증 대위변제 순증액은 2조 2084억원으로, 2024년(2조 4005억원)에 이어 2년 연속 2조원대를 기록했다. 대위변제율은 최근 2년 연속 5% 안팎을 유지한 반면, 회수율은 4%대 초반에 머물렀다. 보증을 통해 시간을 벌고 있지만, 부담은 정책금융 쪽으로 누적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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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의 전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소기업 부실이 중견기업과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구조조정의 최종 부담은 산업은행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은 중견기업 대출과 기업 구조조정, PF(프로젝트파이낸싱)의 핵심 축이다. 최근 PF와 기업 구조조정 물량이 다시 늘어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발 부실이 중견기업으로 번질 경우, 산업은행의 역할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흐름은 거시 환경과도 맞물린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성장률은 0.97%로 사실상 0%대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1%대 중반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미국 관세 정책, 글로벌 경기 둔화, 고환율 변수는 여전히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성장 회복이 지연될수록 중소기업의 상환 여력은 더 빠르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1조 4000억원·0.9%·3조 5000억원'이라는 숫자 조합을 정책금융 리스크의 전조로 본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중소기업 금융의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좌표라는 것이다. 성장률이 1% 안팎에 머무는 경제에서 이 좌표가 더 안쪽으로 이동할지,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물지는 이제 정책금융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KDB미래전략연구소는 "중소기업 신용위험 확대 등으로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태도가 올해 크게 완화되기 어렵다"며 "대기업은 회사채 등 직접금융으로 이동하고, 중소기업은 신용위험이 커지면서 은행권이 이중 압박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연체율 자체보다 대위변제 확대와 정책대출 공급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며 "구조조정 없이 만기 연장과 리파이낸싱만 반복되면, 부담은 결국 정책금융 전반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