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 끝판왕 … 탈세 막겠다며 '양두구육'면세유 급유선에 실효성 없는 '봉인'으로 '10조' 수출 흔들정부 "韓 벙커링 시장은 물량 빼돌리기 해적판" 공식 인정한 셈'규제심사' 절차적 하자 이어 항만 경쟁력 약화, 추락 사고 위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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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상 벙커링(외항 선박용 면세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존유의 부정유통(탈세) 차단을 위한 규제가 강화된다.

    장기적으로 국내 약 400여척에 달하는 급유선에 '질량유량계(MFM. Mass Flow Meter)'를 장착, '정량' 투명거래를 유도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과정이 의문투성이다. 실효성도 전혀 없고, 자칫 규정을 지키는 과정에서 추락 등 사망 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어 관련 업계의 불만만 고조되고 있다.

    특히 벙커링 과정에서 선사와 정유사간 모든 계산이 완료된 후 급유선에 남은 잔존물량에 대한 소유권도 명확하지 않아 눈먼 돈을 놓고 논란도 예상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는 4월 1일부터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개별소비세법 및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이하 개소세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앞서 해양수산부는 해상유 불법유통 차단을 위해 선박연료 공급선에 MFM 설치를 의무화해 외항 선박 등에 벙커링 시 정량을 속이지 않도록 모니터링하는 '선박연료 공급업 정량검사 제도'를 도입,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외항선박 또는 원양어선에 사용하는 경유, 중유 등 면세유의 부정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면세유류공급명세서를 작성할 때 면세 용도로 급유했다는 증명자료를 포함해야 하는데, 'MFM'을 통한 급유량 측정자료를 제출토록 했다. 사실상 급유선에 대형 주유기를 달아 정확한 양을 측정해 새는 기름이 막아 보자는 취지다.

    면세유 부정유통은 곧 '탈세'로 이어지는 만큼, 너무나 당연한 조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후 과정은 시장 혼란만 가중한다. 국내 약 400여 척에 달하는 급유선에는 단 한 척도 MFM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시범사업선 제외). 한 척당 1억5000만원에서 최대 2억5000만원의 비용이 투입되는데, 영세사업자들인 급유선 선주들이 시설을 갖출 여력이 없다.

    문제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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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해수부와 기재부 그리고 국세청의 움직임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정부가 나서서 "그동안 한국의 벙커링 시장에 정량 공급이 없다"는 것을 공식 인정한 꼴이 된다. 선박 소유주인 선사에서 정유사에 이미 지불한 금액보다 적은 물량을 공급하는 '빼돌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빼돌리기'는 수법은 단순하다. 선장이나 갑판장 등 선박 관계자의 '뒷돈' 거래로 이뤄지는 '횡령'과 급유선이 약속 물량을 공급하지 않고 몰래 훔치는 '해적질' 두 가지뿐이다. 게다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는 미세하게 계속 흔들리다 보니 체적 측정이 불가능한 점도 물량 속이기를 부추긴다.

    정부가 발표하는 벙커링 탈세 규모와 양 자체가 횡령, 도난 등 범죄 자료인 만큼, 구상권 청구 등 국제분쟁 및 사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MFM'을 통한 급유량을 사업 초기에 확인할 수 없는 만큼, 면세유를 담은 연료탱크를 선박에 급유하기 전까지 반드시 '봉인'을 해야 한다.

    하지만, 봉인 자체로 탈세 방지와 관련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해수부는 물론, 기재부, 국세청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막무가내다. 일단 발의를 했으니 규제심사라는 절차도 무시하며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해수부가 기획한 '봉인' 프로젝트가, 유류세 인하로 세수 부족에 허덕이는 기재부와 국세청을 자극한 셈이다.

    대다수의 해상면세유 불법유통 사례는 급유선이 정유사로부터 연료유를 선적해 본선에 급유하는 과정이 마무리된 이후 발생한다. 급유 탱크 봉인과 상관없이 바닥에 남은 잔존유에 따른 것으로 증빙서류에 봉인 확인서를 포함하더라도 불법유통 근절 효과는 사실상 없다.

    단순 '봉인' 조치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사실상 전무한 가운데, 복잡해진 절차로 항만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확인을 위해 수십미터에 달하는 갑판에서 외줄 사다리를 타고 급유선으로 내려와야 하는 만큼, 추락 등 인명 사고 우려도 크다.

    또 봉인 확인을 정유사 관계자가 해야 하는 만큼, 약 400여명에 달하는 단순 확인 직원을 채용하거나 운용해야 하는 부담까지 추가된다. 이 정도 인력을 운영할 바에는 차라리 설치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게 유리할 정도다.

    사실상 정부가 이번 조치를 통해 정유사를 압박, 영세업체인 급유선에 설치할 질량유량계(한 척당 약 2억5000만원) 비용을 떠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해상벙커링 시장에 정부가 양머리를 걸어 두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만약 개고기 팔다 걸리면 정유사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전형적인 양두구육(羊頭狗肉) 이다.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허세를 부리는 꼴이다.

    문제는 급유선에 질량유량계를 정부 예산이나 정유사 부담으로 설치해 준다 해도, 급유선사들이 이 조건을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급유선에 남는 잔존제품 자체가 이미 선사와 정유사간 결제가 완료된 제품인 만큼 소유권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유사에 반품하는 것도, 다음에 해당 선사의 배가 접안했을 때 추가로 공급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 ▲ 법 재‧개정 절차.
    ▲ 법 재‧개정 절차.
    항만 경쟁력 약화도 큰 문제다. 

    한 정유사 부두는 급유선이 매일 20∼30척씩 입항하는데, 1척당 40∼50개(급유선 1척당 연료탱크 약 10개 기준)의 봉인과 해제 과정에 최소 1~2시간이 소요된다.

    외항선들이 정유사 출하 지연으로 국내 부두에서 희망하는 시기에 연료유 공급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거액의 체선료를 부담해야 한다. 결국 급유 지연은 곧 비용인 만큼, 인근 저우산(중국)이나 싱가포르 등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가 나서 우리 항만으로 급유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을 쫓아내는 형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상 연료유 급유 시장의 효율성 하락은 물론, 공급시장 교란도 불 보듯 뻔하다.

    급유선들은 유창(연료탱크)을 구분해 연료유 선적 후 다수의 선박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급유선 및 터미널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데, 봉인 조치로 한 척당 한 건의 주문만 가능해 급유선 공급 효율성 하락 및 소량 주문 선박에 대해서는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는 부작용도 피할 수 없다.

    해외 어느 곳에서도 사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규제를 해수부와 기재부, 국세청이 들고나온 것이다.

    규제의 효과 없이 부작용만 뻔한데, 단순히 정부의 책임 회피를 위해 추진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처럼 보이는 이유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데, 규제개혁위원회의 검토도 받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까지 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겉으로는 좋은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속이 전혀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양두구육'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면 효과가 담보되지 않는 급유선 연료탱크 봉인 등의 규제 삭제는 물론, 절차적 하자까지 있는 개정안에 대한 원점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