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경쟁 심화 불구 '韓 3사 R&D', 中 1사 보다 적어국가 미래 좌우할 전략산업의 민낯 … 지원 넘어 동반자 돼야 거울나라의 엘리스 '레드 퀸' 효과 … 더 빠르지 못하면 '도태'버거운 자전거 패달 사투 … 넘어지지 않게 정부 함께 올라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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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성 이미지.
대한민국 미래먹거리 전략산업인 K배터리가 생존을 위해 '나 홀로 사투'를 벌이며,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패권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공세로 시장점유율은 떨어지고 있고,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원가 부담은 커지고 있다.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이 자국 첨단산업에 천문학적인 현금 등 직접 지원 카드를 잇달아 내놓는 것과 대조적이다.우리 정부의 '강 건너 불구경식' 관망세는 주식시장에 그대로 투영된다. 최근 공매도가 전면 재개되면서 K배터리의 현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공매도 잔고가 높은 2차전지 업종은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하루 거래량의 30% 이상이 공매도로 채워졌고, 대다수 2차전지 업종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대한민국 K배터리의 현실이다.자칫 꽃도 피지 못하고, 패권을 중국에 넘겨주게 생겼다. 한때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LCD(액정표시장치)처럼... "수만명에 달하는 직원들 문제만 아니라면, 지금 당장 그룹 차원에서 사업을 철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LCD업계 고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K배터리는 우수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왔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뒷배로 맹공에 나서는 중국 업체들 때문에, 한때 세계 최대 규모와 점유율을 자랑했던 삼성과 LG가 잇따라 철수했던 악몽이 재현될까 걱정이다. -
- ▲ 레드 퀸(붉은 여왕) 효과.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주인공은 모든 것이 반대로만 가는 거울나라에서 끊임없이 뛰어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경험한다.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라도 머물려면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 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채찍질 한다.'레드 퀸(붉은 여왕) 효과'로 잘 알려진 이 이야기는 단순히 동화속 이야기가 아니라, K배터리 생존을 위한 법칙이다.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혁신해야 한다. 즉 중국과 똑같이 뛰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최소한 두 배는 더 빠르게 뛰어야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문제는 현실이다. K배터리는 과연 이미 앞서 뛰고 있는 경쟁자 중국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지난해 글로벌 1위 중국 CATL의 R&D 투자 액수는 186억 위안(약 3조7600억원)이다. K배터리 3총사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3사 합산(2조6600억원)보다 1조원이나 많다. 전기차 판매 1위 중국 BYD는 그 보다 더 많은 201억8000만위안(약4조800억)을 투입했다.적자에 허덕이면서도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기업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돈의 문제만도 아니다. CATL은 국내 3사 연구개발 R&D 인력을 합친 것보다 2배 많은 2만명 이상의 연구원을 고용했다. 게다가 근무는 '8·9·6 근무제도(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를 시행 중이다. 중국 글로벌 기업의 기존 노동 강도를 상징하는 '9·9·6 근무제'를 넘어선다.과로사회를 낳는다는 비판도 많지만, CATL을 글로벌 1위 배터리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원동력이라는 평가다.R&D 역량의 격차는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진다.지난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는 CATL로 41%다. 2위는 BYD로 15%다. 점유율 톱10 6개사(CALB, EVE, 고션, 선와다 추가)의 점유율은 74%로, 1년 새 11%P 급증했다. 반면 한국 배터리 3사는 2023년 24%에서 지난해 14%로 떨어지면서 2위 BYD 발 밑에 그쳤다.이러한 '수적 열세'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레드퀸 효과'가 주는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한다. 최소한 중국기업들보다 더 빨리, 더 오래, 더 강도 높게 접근해야 한다.K배터리 삼총사는 이미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속도로만 달린다면 미래는 'LCD 악몽'이다.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자전거에 올라탄 K배터리는 패달을 멈추는 순간 넘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사즉생 각오로 패달을 경쟁업체보다 두배, 세배 더 굴려야 한다. 정부가 함께 올라타 도와줘야 한다.CATL을 비롯한 중국기업들이 보조금, 인재 양성 등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기반으로 현재의 위치에 오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정부의 지원을 반도체 수준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기업별 연구개발 부담을 줄이고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속도를 높이려면 근무 시간 규제도 손봐야 한다. 이미 반도체 업계는 K-칩스법을 통해 정부 지원을 끌어냈고, 주 52시간제 특례를 적용받고 있다.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도태될 수밖에 없다.시장은 급변화하고 있다. 기술 리더십의 중심축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옥석 가리기 과정에 돌입했고, 이 상황을 극복한 업체들만 살아남게 된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반드시 오는 법이다. 시장 재편이 끝나는 순간, 폭발적 성장세에 과실을 따 먹어야 한다.한국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불리는 투자세액공제 '직접환급' 이 필요한 이유다.정부는 국가전략 기술을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세액공제를 확대했지만, 현행법이 법인세를 깎아주는 방식에 제한되다 보니, 사업 초기 막대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아직 영업이익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업계엔 무용지물이다.최근 3년간 투자금은 수조원에 달하지만, 실질적인 세액공제 혜택은 부족하다 보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프랑스, 캐나다의 경우 투자금에 대해 현금 환급이나 제3자 양도 등의 방식으로 지원해주고 있다.실제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흑자를 내지 못해 1조원에 육박하는 투자세액공제액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아울러 해외자원개발 투자 시 세액공제도 필요하다. 세액공제가 광물확보에만 한정돼 있다 보니 그 범위가 제한적이다. 필수 광물의 안정적 확보를 보장하고 자원 개발에 필요한 투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세액공제가 절실하다.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동반자가 돼야 한다. 멈추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자전거에 함께 올라타 중국, 미국을 넘어서는 과감한 결단(한국판IRA)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