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고사양 낸드 수요 껑충中 가격·내수 앞에서 중소용량 메모리 시장 점령 SLC·MLC 대신 QLC 등 차세대 낸드로 '선택과 집중'
  • ▲ 삼성전자의 MLC 낸드플래시 제품.ⓒ삼성전자
    ▲ 삼성전자의 MLC 낸드플래시 제품.ⓒ삼성전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가 조만간 저사양 멀티레벨셀(MLC) 낸드플래시 사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추격이 거센 가운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수익성 높은 고사양·고용량 낸드 플래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영향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멀티레벨셀(MLC) 낸드플래시 메모리 사업 철수 가능성이 점쳐진다. 멀티레벨셀 낸드플래시는 기본 저장 단위인 셀(cell) 하나에 2비트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를 말한다. 2000년대 들어 보편적으로 쓰였지만 현재는 원가 경쟁력 등에서 밀려 활용처가 제한적이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계속 저장할 수 있는 장치로,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양대 제품으로 꼽힌다. 한 개의 셀에 몇 개의 정보(비트 단위)를 저장하느냐에 따라 싱글레벨셀(SLC·1개), 멀티레벨셀(MLC·2개), 트리플레벨셀(TLC·3개), 쿼드레벨셀(QLC·4개) 등으로 구분된다. 하나의 셀에 담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더 작은 칩에 고용량 구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칩의 내구성과 안정성 유지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AI와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수요가 늘면서 시장의 관심은 현재 주류인 TLC에서 QLC로 옮겨가는 추세다. 현재 QLC 낸드를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 마이크론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모리 3사의 MLC 사업 철수설은 중국기업들의 거센 추격과 수요가 폭증하는 고사양 낸드플래시 메모리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국기업들은 미국의 대중제재에 맞서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대표적이다. 2016년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만 해도 사업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2022년에는 세계 최초로 232단 낸드 양산에 들어갔으며, 올해 들어서는 270단 수준의 1테라비트 TLC 5세대 3D 낸드를 양산한 것으로 알려진다. 

    상대적으로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SLC나 MLC 등 경우 중국기업들이 가격과 내수시장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아울러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따라 고용량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의 수요가 늘면서 낸드도 고사양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2023년 387억 달러였던 낸드플래시 시장 규모가 AI관련 수요 확대에 힘입어 2028년 1148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평균 24%의 성장률이다. 이 가운데 MLC 기반 제품의 비중은 1.3~1.5%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구형 낸드플래시 대신 고부가가치 낸드플래시 생산을 늘리는 ‘선택과 집중’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메모리 3사는 비슷한 이유로 싱글레벨셀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상당수 철수한 상태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부터 QLC 낸드 생산량을 늘림과 동시에 차세대 낸드플래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메모리 3사가 멀티레벨셀 낸드 사업에서 철수하는 경우 중국이 점령한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국은 저가 물량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에 밀려 대형 LCD 산업에서 손을 뗐다. 앞서 지난 2020년 삼성디스플레이가 대형 LCD 사업에서 철수했고, 지난해 9월 LG디스플레이도 광저우 LCD 공장을 중국 CSOT에 팔기로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LCD 공장은 이달 1일부터 T11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생산라인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매각대금은 2조2466억원으로 정해졌다. 

    중국이 LCD 산업을 독점하면서 가격 주도권도 가진 상태다.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높은 수준의 가격을 유지하는 식이다. 그 결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세트업체의 수익성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만약 MLC와 같은 구형 낸드도 갑자기 수요처가 늘어나게 되면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기업들이 가성비 높은 중소용량 메모리를 앞다퉈 생산하면서 수익성이 높고 기술력을 요하는 제품에 집중하는 게 나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