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전쟁 속 첨단·제조업 기술 탈취 가속중국, 미국 우방국 한국 산업 곳곳 '집중 포격'기술 탈취·해킹·지분 투자 등 공격 형태도 다양韓조선·방산도 위험 … "기술 유출, 국가적 손실"
  • ▲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KDX-III Batch-II). ⓒHD현대중공업
    ▲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KDX-III Batch-II). ⓒHD현대중공업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미국의 핵심 우방국인 우리나라가 이 갈등의 최전선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군사·에너지 등 다방면에서 주도권 경쟁을 이어가는 사이 한국에도 중국이 배후로 의심되는 기술 탈취와 사이버 공격이 거세지는 형국으로,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으며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과거부터 중국은 전자·반도체, 금융, 에너지, 의료, 교육, 문화콘텐츠 등 한국이 강점을 지닌 산업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기술 및 인력 탈취를 시도해왔다. 최근 SK텔레콤에서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건 역시 중국 배후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조선·방산’ 산업이 다음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의 공세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군사적, 전략적 목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과 방산 분야가 공격 타깃으로 지목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이 촉발한 글로벌 안보 강화 움직임은 우리 조선·방산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몸값이 급증한 ‘K-조선·방산’ 기술력은 더없이 매력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조선·방산, 세계 최고 기술력 … 동맹국과의 협력 '속도'

    우리나라 조선업은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컨테이너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수상함, 잠수함 등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글로벌 수주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글로벌 선박 수주에서 17%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중국(70%)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기술력과 품질 면에서는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조선 3사 모두 3년치 이상 일감을 확보한 상황에서 선박 주문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선별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중국 선사 및 중국산 선박에 대한 규제 강화로 글로벌 선주사들이 한국 조선사로 발주를 돌리며 K-조선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컨테이너선 시장은 지난 10년간 중국 조선사들이 저가 수주 전략으로 압도적 우위를 보여왔지만, 우리 조선사가 최근 며칠 새 3조 규모의 컨테이너선을 수주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해군력 재건 계획에 따라 K-조선이 협력사로서 최대 수혜를 누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조선산업 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군함 건조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미 해군은 중국과의 해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함정 건조 일정을 단축할 필요성이 커졌다.

    한국은 다목적 구축함(KDDX), 대형수송함(LPX), 한국형 경항공모함(CVX) 등 다양한 군함 건조 경험과 기술력을 보유 중이다. 국내 조선소는 미국과 함정 중정비(MRO) 및 신규 건조 협력 가능성을 타진 중으로, 한국과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 관계에 비춰 K-조선이 미국의 대규모 함정 건조에 직접 참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방산은 K9 자주포, K2 흑표 전차, FA-50 경공격기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으며 ‘방산 4대 강국’으로의 도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였던 방산 수출액은 지난해 95억 달러(약 13조7000억원)로 급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 LIG넥스원 등 방산부문 7개 기업의 작년 말 수주잔액은 100조원을 돌파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여파로 세계 각국이 방위비 증액에 나서면서 K-방산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국제 정세 불안으로 자주포 전차 등 재래식 무기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이를 제때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10~20년 전보다 줄어든 가운데 ‘방산 강국’인 K-방산이 이 수요를 흡수하며 급성장 중이다.

    AI(인공지능), 우주, 유·무인 복합체계, 로봇, 반도체 등 첨단기술과의 융합 면에서 한국 방위산업의 강점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FA-50은 AI 기반 항법 시스템과 저렴한 운용 비용으로 동남아 및 남미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각국의 군사력 증강 요구와 함께 K-방산의 영역도 육·해·공을 넘나들며 위상을 강화할 전망이다.

    中공세 가속화 … "민관 협력·국제 공조로 방어선 구축해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기반 K-조선·방산이 미국과 대척점에 서 있는 중국의 새로운 공격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조선·방산이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공급망에서 필수적인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우리 기술 경쟁력이 동시에 중국의 공세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조선·방산업계는 이미 북한과 중국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해킹 및 기술 탈취 위협을 받고 있다. 실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공격을 수차례 받았는데, 이때 이지스급 구축함과 잠수함 설계도 등 민감한 군사 관련 자료도 유출됐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뿐만 아니라 원자력 연구기관, 해양·조선기술 연구기관 등 국가조직도 북한 해킹조직으로부터 공격받은 사례가 있다. 북한 해킹조직은 방산업체에 침투하기 위해 사회공학적 공격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링크드인 등에 채용 담당자로 위장가입해 방산업체 직원에게 접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쌓는 식이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 해커는 이직 상담을 핑계로 왓츠앱·텔레그램 등 다른 SNS로 유인하고, 일자리 제안 PDF 발송 등을 통해 악성코드 설치를 유도했다. 악성코드가 배포되기 전에 발각되자, 해킹조직은 직원들에게 스피어피싱 이메일을 발송하는 등 다양한 추가 공격을 시도했다.

    중국은 우주·AI·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과 인력을 공격적으로 흡수, 빠르게 추격 중이다. 군사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중국의 기술 유출 시도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이는 조선·방산업계의 기술 유출은 단순한 기업 손실을 넘어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 기술은 해군력의 핵심이며, 방산 기술은 국가 방위력의 근간”이라며 “조선업의 선박설계 기술이나 방위산업의 K2 전차 사격통제시스템이 유출된다면 한국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은 우위를 상실하고, 군사적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가 경제와 안보의 핵심 자산에 대한 중국의 전방위 사이버 공세와 기술 유출 시도를 기업 단독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에 중론이 모인다. 정부도 국정원과 방위사업청을 통해 보안 강화를 추진 중이지만, 민관 협력과 국제 공조를 통해 방어선을 더욱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외교의 전략적 카드로 부상한 조선·방산에 대한 공격은 국가적 차원의 심각한 도전”이라며 “SKT 해킹 사건은 그 서막일 뿐이며, 다른 산업군도 얼마든지 타깃이 될 수 있다. 정부, 기업, 국민이 함께 국가 차원의 보안 대응 체계를 구축해 한국의 기술 우위를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