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새 식품기업 60여 곳 연쇄 가격 인상에 정부 강력 대응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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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동서식품, 대상, 농심, 오뚜기, 빙그레, 오리온, 롯데웰푸드 등 60여 개 식품·외식기업이 제품 가격을 대폭 인상하며 서민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가중된 가운데, 범정부 차원의 식음료 가격 안정 대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 ▲ ⓒ뉴데일리DB
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주요 식음료 업체들이 라면과 인스턴트 커피,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을 집중적으로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달까지 최근 6개월간 가격을 올린 식품·외식업체는 60곳이 넘는다.
동서식품은 지난달 30일 제품 출고 가격을 평균 7.7% 올렸다. 주력 제품인 커피믹스와 인스턴트 원두커피 가격 인상률은 평균 9%에 달한다. 동서식품의 제품 가격 인상은 지난해 11월 15일(평균 8.9% 인상) 이후 불과 6개월 만이다.
대형마트에서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180개입)는 지난해 11월 상순 2만9100원에서 3만4780원으로 뛰었다. 약 반년 만에 19.5% 오른 셈이다. 카누 아메리카노 미니(100개입)는 같은 기간 2만2400원에서 2만6700원으로 19.2% 증가했다.
동서식품은 재룟값 상승과 환율 부담이 가중돼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로 떨어졌다.
지난달 유제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빙그레는 발효유 대표 제품인 요플레 오리지널 멀티(4개입)의 소비자가격을 3780원에서 3980원으로 5.3% 올렸다. 지난 3월에 더위사냥과 붕어싸만코 등 아이스크림과 커피, 과채음료 제품 가격을 먼저 인상한 이후 2개월 만에 다른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서울우유협동조합은 가공유와 발효유 등 54개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7.5% 인상했고, hy는 야쿠르트 라이트 가격을 220원에서 250원으로 13.6% 올렸다.
주류회사도 가격 인상을 이어갔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켈리 등 맥주 출고가를 지난달 평균 2.7% 인상했다. 오비맥주는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 가격을 지난 4월 평균 2.9% 올렸다.
앞서 3∼4월에는 식품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잇달아 올렸다.
1위 업체 농심은 지난 3월 17일 신라면 가격을 2023년 6월 수준인 1000원으로 다시 올리는 등 라면과 스낵 17개 가격을 인상했다. 오뚜기도 4월 1일자로 진라면 등 라면 16개의 출고가를 평균 7.5% 올렸고 팔도는 같은 달 14일부로 라면 가격을 인상했다.
이에 더해 농심은 이날부터 보노스프 4종 가격을 4000원에서 4400원으로 10% 인상했다. 오뚜기는 앞서 지난 4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3분 카레와 짜장 제품 가격을 약 13.6% 인상했다.
제과업체에서도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오리온은 지난해 12월 13개 제품 가격을 평균 10.6% 인상했다. 초코송이는 편의점 가격이 1000원에서 1200원으로 20% 올랐고 촉촉한초코칩은 2400원에서 2800원으로 16.7% 인상했다.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6월에 이어 8개월 만인 지난 2월에도 가격을 올렸다. 초코빼빼로(54g)는 지난해 6월 1800원에서 지난 2월 2000원으로 8개월여 만에 17.6% 올랐다. 크런키(34g)는 같은 기간 1200원에서 1700원으로 41.7% 인상됐다.
대상은 올해 1월 드레싱류 가격을 23.4% 올리고 후추는 19% 인상했다.
식품·외식업체들은 원부자재 가격 인상과 수개월간 지속된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제품 가격을 인상해왔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말 계엄부터 탄핵, 대선에 이르는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일부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집중적으로 단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식품업체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앞다퉈 가격을 올리는 반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할 때는 이를 소비자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지난 6개월 동안 60여 곳에 달하는 식품·외식업체들이 단기간에 연쇄적으로 가격을 인상했다"며 "이러한 현상은 불확실한 시기를 기회 삼아 기업들이 수익 확대에 집중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품기업들은 각 품목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소비자 물가 안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가격 결정 과정에서 더욱 신중하고 투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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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지난해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 속에서 식품업체들은 큰 폭의 가격 인상을 피해왔으나,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대대적인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롯데웰푸드와 BBQ는 정부의 요구로 인상 시기를 미루는 등 정부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가공식품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연속 설명자료를 내며 "식품업계가 대선 시기와 맞물려 가격을 올린 근거는 없다"며 물가 관리가 느슨해졌다는 지적에 반박하고, 정부와 업계가 인상 품목과 시기 조정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이 집계한 34개 주요 가공식품 중 24개 품목의 가격이 지난 1년간 평균 7.1% 상승했다. 품목별로는 맛살이 50% 올라 가장 많이 올랐고, 커피믹스 34.5%, 고추장 25.8%, 콜라 22.6%, 컵밥 22.2%, 카레 18.0% 등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전월 대비로는 커피믹스가 14.4%, 햄 8.9%, 소시지 6.4%, 카레와 컵라면이 각각 4.3% 올랐다.
통계청의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1%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2.1%를 크게 웃돌며, 2023년 12월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1.3%에서 12월 2.0%, 올해 1월 2.7%, 2월 2.9%, 3월 3.6%로 꾸준히 증가했다. 외식 물가도 지난 4월 3.2% 상승해 13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다.
특히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14만 원으로 전년 대비 1.5% 감소했지만, 식품 물가 상승으로 식비 부담은 더 커진 상황이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6명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 민생 과제로 꼽았다. 한경협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으나 체감 물가는 높다고 분석했다. 국민들은 농축산물과 생필품 가격 안정에 중점을 둔 정책을 가장 많이 원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물가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이어졌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는 "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면 기업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연쇄적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농산물 수입선 다변화와 유통구조 개선 등 정책적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도 농산물 유통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으나, 경기 진작 효과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기후변화가 식품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상기후와 기상재해로 농수산물 생산량이 감소해 신선식품과 가공식품 가격이 올라가는 '기후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봄 사과와 배 가격은 생산량 급감으로 전년 대비 두 배로 뛰었고, 커피와 코코아, 올리브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도 상승했다.
중앙대 이정희 교수는 "기후변화 영향은 장기적이고 복합적이라 단기 대응이 쉽지 않다"며 "정부가 할인 지원 정책 외에 기후 변화에 강한 작물 개발 등 근본적인 수급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철 교수도 "3년 이상 이어진 물가 상승 문제는 단기 해결이 어려워 스마트팜 등 원자재 공급 개선 대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