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시설 공습 … 중동 전면전 우려 고조국제유가 10% 급등,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정부 긴급상황점검회의 … 기업들 긴장 속 예의주시
  • 미국발 관세 폭탄 우려로 불안한 한국 경제에 중동발 전쟁 리스크까지 겹쳤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에 한국경제가 복합 악재에 휘청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새벽 이란 내 핵시설과 군 수뇌부 등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그동안 ‘레드라인’으로 여겨졌던 핵시설까지 타격하면서 중동 전면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란이 보복 공격에 나설 경우 국제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국제유가 10% 급등…원유 수송로 봉쇄 가능성까지 제기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한국시간 13일 오전 11시 24분 기준,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0.10% 오른 배럴당 74.91달러, 8월물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9.66% 오른 배럴당 76.06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세 번째로 원유 생산량이 많다. 이란의 대응에 따라 원유 시장은 더욱 출렁일 수 있다.

    시장에선 이란이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거나, 이곳을 지나는 유조선을 공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석유와 가스 수출의 주요 통로로 전 세계 천연가스(LNG)의 3분의 1, 석유의 6분의 1이 이곳을 지나간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도 이 해협을 통해 수입된다.

    투자은행 JP모건은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거나 무력 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 ▲ 이란 테헤란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은
    ▲ 이란 테헤란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은 "이란 전역의 핵 프로그램과 기타 군사시설 관련 목표물 수십 개를 공격하고 있다"며 이란에 대한 선제 공격을 발표했다ⓒ테헤란=AP/뉴시스
    ◇ 정유·화학·철강 업계 직격탄… 장기화 시 원가·물류비 부담 가중

    국내 정유·화학업계는 중동 위기 시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산업이다. 원유와 천연가스는 주요 원료인 만큼, 공급 차질과 가격 급등은 곧바로 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미 국제 유가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배럴당 80달러 중반까지 올라선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전면전이 현실화되면 원유 공급 불안이 심화되고, 정제마진(제품 판매가에서 원유 구매 비용을 뺀 차익)도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아직은 상황 초인만큼, 향후 변동성이 높아서 유가 상황을 긴밀히 주시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석유 수송로가 실제로 막힌 사례는 거의 없어 당장 원유 공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낮고, 정부와 민간에서 약 200일분 가량의 석유 비축량을 확보해 단기 수급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 유가에 반영되는 데 2~3주의 시차가 있어 당장 내일부터 기름값이 오르기는 어렵지만, 2~3주 후에는 국내 기름값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특히 천연가스 가격 상승 시 석유화학 업계의 부담은 더 커진다. 나프타 등 석유계 원료 가격 상승뿐 아니라 에틸렌, 프로필렌 등 주요 석유화학 제품 제조 원가가 급등하게 된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는 이미 일정 생산분을 보유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원가 상승 충격은 제한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중동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원재료 가격 인상뿐 아니라 물류비와 기타 경비 상승까지 이어져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류 분야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해운업계는 우회 항로 사용과 선박 보험료 인상 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일부 중동 항로를 활용하는 해운주는 테마성 급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 수익 상승으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과 선박 운항 지연이 현실화되면 수출기업 전반에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수출 구조가 중동 시장에 일정 비중을 두고 있는 한국 제조업체들도 영향을 받는다. 중동 국가들의 수요 위축과 교역 차질이 발생할 경우, 자동차·플랜트·건설업계에 적잖은 충격이 예상된다. 특히 최근 수주를 추진 중이던 국내 건설사들의 사우디 프로젝트 진행에도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 ▲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이 알려진 13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920.03)보다 25.41포인트(0.87%) 떨어진 2894.62에 장을 마쳤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뉴시스
    ▲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이 알려진 13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920.03)보다 25.41포인트(0.87%) 떨어진 2894.62에 장을 마쳤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뉴시스
    ◇ 글로벌 금융 출렁 … 환율 리스크 커진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기업들의 리스크도 커진다. 환율이 불안해지면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금리가 뛰면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이날 국내 증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이어졌던 허니문 랠리를 뒤로 하고 대외 악재에 휘청이고 있다. 코스피는 강보합권에서 개장했지만 장 초반 곧바로 하락 전환하며 낙폭을 키웠고, 오후 1시 30분 기준 1.3% 하락한 2880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정부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오후 이형일 제1차관 주재로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 움직임에 따른 무역 피해 대응에 분주한 상황이었다. 이번 중동발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시장 불확실성은 한층 커진 상태다.

    시장에선 당장 국제 유가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국내 물가도 자극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정유·화학·철강 업계에 더해 물류, 항공 업계에도 연쇄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고율 관세, 중동발 공급망 불안, 원자재 급등 등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며 “국내 기업과 금융시장 모두 대외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에 실시간으로 노출돼 있는 만큼, 위기를 회피하기보다는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