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위탁사 신뢰 훼손” 판단출자금 회수땐 매각 조건 전면 재조정매각서 필요이상 정보 오픈해 몸값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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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스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 매각이 '몸값 올리기' 후폭풍에 흔들리고 있다. 1조원대 인수전 막판에 국민연금 위탁자산 정보 제공 논란이 불거지면서, 수조원대 출자금을 쥔 국민연금의 회수 여부가 딜 성패를 가르는 최종 변수로 부상했다. 

    매각이 좌초할 경우 글로벌 PEF인 힐하우스에 우선협상자 지위를 내준 태광그룹 계열 흥국생명에도 다시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출자금 회수'로 판 뒤엎은 국민연금 

    11일 IB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국민연금이 이지스운용에 맡긴 위탁 자산 관련 내부 정보가 매각 실사 과정에서 잠재 원매자들에게 과도하게 공유됐다는 의혹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이지스운용 출자금 약 2조원을 전액 회수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이를 "국가 기밀 유출에 준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하고 해당 운용사를 상대로 민·형사상 조치까지 검토하는 등 초강수 대응에 나선 상태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이지스운용에 약 2조원을 출자해 왔고 이 자금이 투자된 부동산 자산의 현재 규모는 7조~8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지스운용 전체 설정액이 26조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은 대표적인 '키맨' 투자자다. 

    이런 핵심 출자자(LP)가 정보를 이유로 전액 회수를 결정할 경우, 운용자산(AUM) 감소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 힐하우스가 제시한 1조1000억원 안팎의 매각가 전제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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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광그룹
    ◆ 흥국, 매각 절차상 법적 리스크 제기 

    법적 리스크는 국민연금과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흥국생명은 이지스 인수전 본입찰에 참여했다가 힐하우스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내준 뒤,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를 상대로 형사 고소까지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흥국 측은 "애초 프로그레시브 딜은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말을 바꿨다"며 "우협 선정 과정이 형법상 경매·입찰방해죄 및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형사 소송으로 번질 경우, 매각 절차는 장기간 표류가 불가피하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일정 수준 이상 가격을 써낸 본입찰 참여자들만 다시 모아 추가 가격 경쟁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지스 매각의 경우 흥국생명이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의 가격을 제시해 우세를 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진행된 프로그레시브 딜에서 힐하우스가 1조1000억원 수준까지 호가를 올리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가져갔다. 

    흥국 측은 "당초 약속과 다른 구조"라며 "입찰가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태광그룹 입장에서 이번 인수전은 억울함이 남을 수밖에 없는 구도다. 태광은 흥국생명을 앞세워 국내 전략적 인수자(SI)로 이지스 경영권 확보를 추진하며 보험·증권·운용사를 아우르는 금융 포트폴리오에 국내 1위 부동산 운용사를 더한 '자산운용 허브' 구상을 세웠다. 

    그러나 프로그레시브 딜에서 힐하우스에 밀리며 우선협상자 지위를 넘겨줬고, 매각 과정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인수 구상 전반이 흔들리게 됐다.

    그럼에도 태광 입장에서는 딜이 무산될 경우 역설적으로 기회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뒤따른다. 국민연금이 출자금 회수를 검토하며 매각 구조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재도전이 현실화하려면 입찰 절차 공정성 논란과 법적 공방이 먼저 정리돼야 하고, 외국계 자본을 둘러싼 정치권의 시각, 국민연금의 재위탁 판단 등 남은 변수도 만만치 않다. 

    IB업계 관계자는 "이지스와 매각 주관사 측의 공격적 몸값 전략이 되레 신뢰 리스크로 되돌아오면서 매각을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향후 재입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