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로 '3%룰' 포함해 처리… 추후 공청회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경영권 방어 리스크 커져배임죄 폐지 등 경제계 목소리 깡그리 무시… '당혹'
  • ▲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용민 소위원장이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안건을 상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용민 소위원장이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안건을 상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국회가 2일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재계는 충격과 긴장감 속에 망연자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3%룰은 대규모 상장회사의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사실상 3%로 제한해 소액주주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규제다. 기업과 경제단체들은 주주들의 소송 남발과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위협 등을 이유로 철회를 요구해왔지만, 여야 합의로 상법 개정이 현실화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3가지 쟁점(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은 당연히 포함됐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및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을 적용하는 것까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남은 쟁점인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중 사외이사 비율 확대는 공청회를 거쳐 협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 3%룰 포함 상법개정 …“기업 성장 발목 잡을 것”

    이번 국내 상법 개정안에 여야가 전격 합의하면서, 재계는 깊은 당혹감과 함께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국들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오히려 대기업 규제를 강화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 고위 임원은 “마이너스 성장과 고금리·고환율 등 대내외 리스크가 쌓인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까지 즉각 시행된다면 투자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기업들은 상법 개정으로 이사가 다양한 주주의 이익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게 되면서,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과감한 투자보다는 소극적 경영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2019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고배당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엘리엇의 공세로 현대차그룹은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재계는 상법 개정 이후 엘리엇과 같은 사례가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자문 전문 법률사무소 송일의 이수영 대표변호사는 “상법 개정의 가장 큰 문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 전반’으로 확대한 데 있다”며 “이사회가 신사업 투자 등을 결정할 때 개별 소수 주주의 손해 구제 청구나 배임 소송에 무방비로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은 앞으로 새로운 사업에 과감히 도전하기보다는 소송 리스크를 우려해 보수적 경영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기업들은 소송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결정 과정마다 방어논리를 남겨야 하고, 이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상법 개정안에는 ‘주주’라는 개념이 명확히 정의돼 있지 않아 법원이 판례를 통해 해석을 쌓기 전까지는 기업이 의사결정 기준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불명확한 법 조항이 경영현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기업이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했다는 점을 명확히 입증하려면 실무와 서류 작업 부담이 커지고, 그로 인한 시간·비용 소모는 결국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왼쪽)과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개정안 처리에 합의한 뒤 취재진에게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왼쪽)과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개정안 처리에 합의한 뒤 취재진에게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 재계 목소리 반영한다더니… 공청회로 책임 돌려

    당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무한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선(先) 입법·후(後) 보완' 입장을 밝혔었다. 하지만 이번 여야 합의로 경제계 목소리가 더이상 반영되긴 어려워졌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중투표제와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1명에서 2명 또는 전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공청회를 열어 협의하기로 했다"고 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의 합의까지 끌어내자 공청회란 요식 행위로 의견 수렴 명분을 대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민주당측 의지가 강한 데다 대통령 거부권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최대한 우려되는 부작용을 보완하는데 집중할 것”이라면서 “상법 개정안 통과 전까지 기업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할 계획이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여 줄지는 미지수”라 말했다.

    경제계과 논의 과정에서 도출된 '배임죄 폐지 혹은 완화' 얘기도 쏙 들어갔다. 배임죄 폐지 논의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인 이사의 충실 의무가 개인주주까지 확대되면 예상되는 경영진의 줄소송 사태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보완 입법 없이 상법 개정이 강행되면 기업 경영인은 사실상 교도소 담장을 넘나드는 사법 리스크를 상시 지게 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주주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보니, 이에 따른 소송이 기존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