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상보다 혹독한 감축안 제시… 사즉생 주문연말까지 자구책 내야… 생산량 1/4 줄이는 고통 감내기업들 논의 시작하겠지만… 구체적 정부지원안 안보여지역경제 안정화·고용불안 최소화 담보될지도 미지수
  • ▲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공장 2사업장 전경ⓒ여천NCC
    ▲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공장 2사업장 전경ⓒ여천NCC
    정부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산업 재편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업계에 ‘사즉생의 각오’를 주문하며 설비(NCC) 감축 목표량과 협상 시한을 못 박으면서 구조조정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자구책 제출을 선(先) 요구하면서 기업 간 ‘눈치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선제적으로 감축안을 제출하는 기업은 향후 수요가 회복될 경우 대응 여력이 제한되고, NCC 감축으로 인해 다운스트림 제품 생산까지 영향을 받아 가능한 한 설비 감축을 최소화하려 할 수밖에 없어서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석화업계에 따르면 주요 10개 석화업체는 이날 정부와 최대 370만t 규모의 설비(NCC) 감축을 목표로 연말까지 각 사별로 구체적인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총 생산량(약 1200만t)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준으로, 여천NCC 한 곳의 생산능력(200만t)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업계에서는 “단일 기업 전체 물량에 맞먹는 설비를 줄여야 하는 셈”이라며 부담감을 드러내고 있다.

    감축량을 놓고 기업 간 줄다리기가 벌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석유화학 업계 내부에서는 설비 통폐합이나 인수합병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실제로 누가 NCC를 인수할지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NCC 설비를 매각했다가 글로벌 과잉 공급이 해소되고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경우 대응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370만t 감산 목표를 맞추려면 결국 일부 공장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해당 공장의 고용 문제도 불가피하다”며 “NCC는 다운스트림(하류) 제품들의 원재료인 만큼, 생산이 줄면 뒤이어 생산되는 제품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매출과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 전반에 파급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정부가 연말까지 조정안 제출을 요구한 만큼 논의를 서둘러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는 이날 열린 ‘석유화학산업 사업재편 진행상황 관계장관 현안간담회’에서 “업계가 제출한 계획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규제완화·금융·세제 등 종합대책을 적기에 내놓겠다”며 “사업재편을 미루거나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향후 지원 방안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기료 인하, 공정거래법상 예외 적용 등 기업들이 요구했던 내용이 이번 방안에 포함되지 않은 점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우선 자구책부터 마련해 오라고 한 상황이라 기업 입장에서는 공장 가동 중단이나 구조조정 같은 방안을 먼저 제출할 수밖에 없다”며 “어떤 방식의 패키지 지원이 이뤄질지, 지역경제 안정화와 고용 불안 최소화가 실제로 담보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현재는 방향성만 나온 단계여서 지원 내용도 확정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방향에 발맞춰 기업들도 자구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 현재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