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이관 무산·예산 기능 분리로 정책 카드 사실상 전무조율력 잃은 경제 사령탑 … 범부처 대응력 약화 우려내부선 "이럴 거면 왜 쪼갰나" 반발 … 용산 직할 체제 가능성도
  • ▲ 김민석 국무총리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관련 비공개 고위 당정대 회의를 마치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 김민석 국무총리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관련 비공개 고위 당정대 회의를 마치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이 핵심 기능을 잃은 '땜질식 수술'로 귀결되면서 내년 1월 출범을 앞둔 재정경제부(재경부)가 '세제청'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예산 기능은 국무총리 산하 기획예산처로 넘어가고,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이관 계획까지 무산되면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이 사실상 실종됐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애초 기획재정부를 쪼개 예산 기능을 분리하되, 새로 출범할 재경부가 금융정책까지 흡수해 경제·세제·국고·금융을 아우르는 총괄부처로 만든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금융당국 개편안이 돌연 백지화되면서 재경부가 쥔 정책 수단은 세제와 일부 거시정책뿐으로 축소됐다.

    정부는 지난 25일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안’을 철회하고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현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발표 18일 만에 뒤집힌 이번 결정으로 기획재정부 조직 개편은 예산처 신설과 재경부 분리 수준에 그치게 됐다.

    문제는 재경부가 사실상 정책 카드 없는 부처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세제는 매년 세법 개정안 형태로 한꺼번에 다뤄져야 해 단기·탄력적인 정책 수단으로 쓰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내년부터 재경부가 내놓는 경제정책은 구체성이 떨어진 ‘청사진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관가 안팎에서는 “경제정책방향이 아니라 경제정책 검토방향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기재부 내부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내부 게시판에는 “방구석 여포의 참패”, “이럴 거면 경제부총리 타이틀 떼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일부에서는 강력한 예산 편성권과 정책 주도권을 독점해온 과거가 이번 권한 축소의 자업자득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경부의 위상 약화는 곧바로 범부처 정책 조율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예산이라는 ‘채찍’도, 금융이라는 ‘당근’도 없는 재경부가 다른 부처를 설득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가 과거 ‘경제 사령탑’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수단 덕분이었다. 2022년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태, 2021년 중국발 요소수 대란, 2020년 코로나19 마스크 대란 등 범부처 대응이 가능했던 이유도 기재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부처별로 파편화된 대응과 정책 혼선이 불가피할 것이란 목소리가 적잖다.

    향후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될 경우에도 피해 업종 지원과 이해관계자 조율 등에서 범부처 대응이 핵심이지만, 이를 재경부가 주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경제정책 구심점이 약화되면서 용산 대통령실이 직접 조율에 나서는 ‘직할 체제’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이 기능적 필요가 아닌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재부가 정부 부처의 왕 노릇을 한다”며 권한 분산을 공약해 왔다. 실제로 정권 출범 이후 기재부 1급 출신이 맡던 통계청장, 관세청장, 조달청장 등의 자리가 내부 승진으로 채워지며 기재부 고위직 입지가 눈에 띄게 축소됐다.

    재경부가 금융정책 기능까지 가져올 경우, 2008년 이전 재정경제부·금감위 체제로 회귀하며 ‘모피아(재무부+마피아)’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점도 개편 무산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역시 “기재부 기능 분산 원칙에 역행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