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모·플랙트·젤스·그레일 등 연쇄 M&AAI 기반 생태계 구축·시너지 극대화에 초점 이재용 사법 리스크 해소 후 전략적 결단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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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들어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5월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문을 시작으로 플랙트, 젤스, 그레일 등 인수와 전략적 투자가 잇따르며 멈춰 있던 투자 엔진이 재가동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면서 미뤄졌던 투자 행보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삼성전자는 삼성물산과 함께 증상이 없는 사람의 혈액 채취만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는 미국 생명공학 기업 ‘그레일(Grail)’에 1억1000만 달러(한화 약 155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그레일은 혈액 내 수억 개의 DNA 조각 중 암과 연관된 미세한 DNA 조각을 최적으로 선별하고, 이를 인공지능(AI) 기반 유전체 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암 발병 여부 뿐 아니라 암이 발생한 장기 위치까지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다양한 임상시험 결과로 출시한 제품 ‘갤러리(Galleri)’는 단 한 번의 혈액검사로 50여 종의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2021년 출시 이후 현재까지 약 40만건의 누적 검사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국립보건서비스(NHS)와 함께 대규모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갤러리 검사를 활용하면 췌장암, 난소암 등 표준화된 선별 검사가 없는 암을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레일은 자사의 갤러리 검사를 내년 중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승인 신청할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이번 투자를 통해 한국에서 갤러리 검사를 독점 유통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향후 싱가포르, 일본 등에서도 그레일과 협력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그레일의 기술력과 축적된 유전자 기반 암 조기진단 데이터를 삼성 헬스 플랫폼과 연계해 활용하는 전략적 협력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삼성 헬스 사용자에게 혁신적인 건강 관리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를 단순한 바이오 포트폴리오 확장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M&A가 다시 본궤도에 오른 신호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5월 미국 의료기기업체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 부문, 독일 공조업체 플랙트, 7월 미국 젤스 등 M&A를 연이어 추진하고 있다. 올해 초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으며, 로보틱스 알고리즘 업체 피지컬인텔리전스와 로봇 스타트업 ‘스킬드AI’ 등에 대한 지분투자도 단행했다. 

    특히 독일의 냉난방공조(HVAC) 업체 플랙트 인수는 2017년 80억달러(당시 9조3800억원)였던 하만 인수 이후 이뤄진 대형 M&A라는 점에서 안팎의 관심이 컸다. 플랙트그룹은 1918년 설립돼 100년의 역사를 지낸 기업으로, 특히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냉각 시스템과 고도화된 공조 제어 기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올해 들어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인수·투자 사례를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모두 인공지능(AI)이 자리한다. 단순히 새로운 사업과 기술을 얻기보다 기술 융합을 통한 AI 생태계 구축과 이로 인한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 주력 사업을 기반으로 AI 기술을 결합해 인프라(HVAC), 단말기(웨어러블), 서비스(헬스케어)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구축하는 게 골자다. 

    예컨대 플랙트는 데이터센터 냉각 효율을 높이는 AI 공조 솔루션을 통해 인프라 부문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젤스와 그레일의 경우 보유한 디지털 플랫폼을 삼성 헬스 플랫폼과 연계해 활용할 수 있다. 각 투자·인수 건이 개별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AI 통합 생태계’로 맞물리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면서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7월 불법 승계 혐의로 10년 가까이 재판받아 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종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장기간 이어지던 사법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전략적 결단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당분간 AI 생태계 가치사슬 구축을 위해 추가적인 M&A를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자산 포함)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03조원이다. 유력한 분야로는 ▲헬스케어 ▲웨어러블 의료기기 ▲HVAC ▲로봇 등이 꼽힌다. 모두 삼성의 하드웨어 경쟁력 위에 AI 기술을 입힐 수 있는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