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체검사·성분명·엑스레이까지 개편으로 실제 '밥그릇' 흔들리는 개원가젊은 의사들 자조적 기조 확산… 의사사회 세대갈등까지 격화해결은커녕 의정갈등 더 심화… 여당 입법이 동시에 압박하는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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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성이미지
이재명 정부 들어 의료정책의 방향이 뚜렷해졌다. 문제는 그 방향이 의료현장을 설득하는 쪽이 아니라 속도에 올인하는 쪽이라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 논란으로 커다란 갈등의 골을 남겼다면 지금은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있다. 정책의 목적보다 정치 일정이 앞서고, 논의의 과정보다 '관철해야 하는 공약'이 우선 순위가 되는 기묘한 구조 속에서 의정갈등은 오히려 가속되고 있다.결국 피해는 다시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경험했던 진료 차질과 대기 지연, 필수과 인력 붕괴의 현장은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상태다. 이 문제를 풀겠다며 출범한 정부와 여당이 갈등의 구조를 재생산하는 모양새다. 더구나 공공의대를 비롯한 논란이 불가피한 정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의 충돌이 오히려 더 거세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지역의사제는 그 상징적 출발점이다. 고위당정협의회가 지역의사제 도입을 공식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10년 의무복무를 포함한 법안을 발의했다.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지역 인력이 필요하다는 명분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십 년 지속될 제도를 정권 1년 차 속도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위험하다. 제도는 과정 위에서 안착하는 것이지, 속도 위에서 굳지 않는다. 지역 격차 해소라는 국가적 과제가 '정권의 시간표'에 갇히는 순간 정책은 지속가능성을 잃게 된다.의대 증원 재논의도 같은 궤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사회적 파열음을 내며 결국 멈춰 세웠던 그 주제를 다시 도마 위에 올렸다. 복지부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는 인력 수요 예측의 중심을 맡지만, 그 구성에서는 정작 임상 전문가가 빠져 있다. 경제학·정책학 중심의 기술관료 모델로 의료인력을 계산하려는 시도 자체가 현실을 왜곡한다. 의료는 숫자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련구조, 진료과 편차, 지역별 인력 소모, 병원 생태계의 특수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시스템이다. 전문가가 빠진 결론은 아무리 정교해 보여도 현장을 설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특히 개원가는 검체검사 위·수탁 분리 청구, 성분명 처방 도입,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 등 세 갈래 압박에 동시에 직면했다. 하나하나만 보면 정책적 명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되는 순간, 이는 개선이 아니라 재편이다. 검체검사 개편은 개원의 수익구조를 직접적으로 흔드는 실질적 타격이고, 성분명 처방은 진료권 약화를 넘어 '책임은 의사에게 남고 선택권은 축소되는' 비대칭 구조를 만든다.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은 면허체계의 안정성을 흔들고 환자 선택권에 혼란을 유발한다. 이는 '밥그릇' 논쟁이 아니라 실제로 밥그릇이 줄어드는 현실적 사안이다.이번 갈등의 특이점은 정부의 행정 드라이브와 여당 의원들의 입법 드라이브가 동시에 작동하는 '투트랙 압박 구조'라는 점이다. 의료계가 체감하는 변화는 개별 정책의 파편이 아니라, 한꺼번에 밀려오는 '재편 패키지'에 가깝다.검체검사 개편은 복지부의 행정으로, 성분명 처방·한의사 엑스레이·응급실 관련 법안은 민주당 의원들의 입법으로 밀어붙여지고 있다. 최근 김윤 의원이 발의한 응급실 법안도 같은 맥락이다.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지만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중증 분류 강제와 책임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한다.더 큰 문제는 의사사회의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 말기 의료계 고위 관계자들은 "차기 정권이 의정갈등 구조를 매듭짓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기대하곤 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현장에서는 "전문가 의견을 듣고 설득할 생각이 없고, 공약 추진에 드라이브만 건다"는 냉소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최근 만난 전공의들은 "한국 의료에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해외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개원가 원장들 역시 "각종 정책이 의사를 옥죄고 밖으로 내모는 방향"이라고 말한다.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탈한국'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는 현실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경고음이다. -
- ▲ ⓒ대한의사협회
16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궐기대회는 그래서 단순한 조직 행동이 아니라 구조적 반응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남긴 상처는 분명했고 기자 역시 그 비판에서 예외를 둘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갈등은 '밥그릇' 프레임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차원이다. 정부와 여당이 행정과 입법에서 동시에 속도를 올리며 밀어붙이는 국면에서 의료현장은 갈등을 넘어 균열을 체감하고 있다. 이번 궐기대회는 그 균열의 첫 신호에 가깝다.결국 이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의료정책은 설계는 있어 보이지만 과정이 없다. 과정이 빠진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관철시키려는 힘만 있고 설득의 과정이 없는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의료는 정권의 속도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성 위에서 움직여야 하는 영역이다.의료정책은 '바로 하기'보다 '맞게 하기'가 중요한 분야다. 속도보다 과정, 명분보다 현실, 정치보다 현장을 봐야 한다. 의료정책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의료현장이 아니라 환자의 일상이다. 이 균형이 깨지는 순간 의료정책은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갈등의 기제로 전락한다. 젊은 의사들이 탈한국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금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