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쇼크 아니라 구조적 전환" … 1470원 고착화 조짐2PF·제조업 연쇄 긴축, 금융권 '부실의 전초전' 진입구두개입 먹히지 않는 시장 … 환율 상승 구조화 직면정책·금융·기업 모두 새 기준선 세워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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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다시 1470원을 넘어섰다. 한때 정부의 구두개입과 국민연금 카드로 1450원대까지 진정됐던 흐름은 불과 며칠 만에 되돌아갔다. 외환시장은 "이제 1470원대가 일상"이라는 심리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초고환율이 '일시 충격'이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전환되는 신호다.◆ 기업의 비용·부채 구조 동시 압박 … 현장이 무너진다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5원 오른 1472.4원에 개장했다. 시초가 기준으로는 지난 4월 9일 1484원을 기록한 이후 약 7개월 만의 최고치다.환율 상승은 반도체·전자업종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미국 테일러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의 투자비는 환율 1400원 기준 약 23조원이지만, 1500원이 되면 26조원 수준으로 3조원 이상 부담이 불어난다. SK하이닉스 역시 첨단 패키징 투자금의 달러 비중이 높아 재무계획을 수시로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국내 소부장 협력사들의 달러 조달 부담까지 더해지며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 '환율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철강·석유화학 업종도 핵심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 제조원가가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항공업계는 외화부채가 많아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대한항공만 330억원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인건비·로열티를 달러로 지불하는 게임사, 원료의약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약사도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다.중소·중견 제조업은 더 취약하다. 대부분이 단기 달러차입에 의존해 만기 도래 시점의 환율이 그대로 생존 문제로 이어진다. 원가 상승을 가격에 전가하기도 어렵다. 만기가 6개월~1년인 달러 대출을 갚지 못하면 곧바로 부도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고부가가치 제조 비중이 높아 환율 상승이 예전처럼 수출 확대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고, 기업·가계 모두 체감 부담이 크다"고 분석했다.◆ 금융권은 '충당금 방어전' 돌입여신 부실 위험은 금융권으로 즉각 전이된다.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를 고착화되는 분위기에서 은행들은 취약 차주 점검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가장 빨리 위험 신호가 켜진 곳은 건설·PF 부문이다. 달러 조달 원가 상승에 분양 지연까지 겹치면 자금흐름이 즉시 막히는 구조다. 일부 지방 중견건설사는 현금 유출입 균형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어 은행은 PF 신규 취급을 사실상 중단하며 회수 계획 재검토에 나섰다. 비은행권에서는 이미 연체율 상승이 나타났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1분기 비은행 건설업 연체율은 10%를 넘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제조업·수출기업도 환율 10원 변동만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출렁인다. 원가 부담을 납품가에 온전히 전가하기 어려운 데다 중소 협력업체는 환헤지 수단 자체가 제한적이다. 캐피탈·보험·증권사도 외화 부채 및 평가손 확대, PF ABCP 할인 매각 증가 등 '2차 충격권'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나온다.업계에서는 "대규모 연체가 나타나기 직전 단계, 부실의 전초전이 시작됐다"는 긴장감이 퍼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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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시장개입 '단기 진통제' 불과 … '뉴노멀 환율' 인식 안전판 마련해야정부는 환율이 치솟자 "가용 수단 총동원"을 선언했고, 국민연금과 환율 안정 협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 즉시 환율은 15원 넘게 빠졌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1470원대를 재돌파했다. 구두개입의 효과가 일시적 조정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전문가들은 현재 원·달러 1400원대가 위기성 일탈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선(뉴노멀)'에 가까워졌다고 진단한다. 저성장 고착, 해외투자 확대, 자본시장 경쟁력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환율 상승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실제로 한국은 최근 4년 연속 연평균 환율 상승을 경험했다. 공급망 다변화와 달러자산 선호 심리가 맞물리면서 고환율이 평상화되는 '뉴노멀 환율' 시대가 왔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이에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 운용, 통화스와프 유지, 외화 유동성 규제 조정 등 시장 과열 완화 중심의 정책 조합이 요구된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권에는 고환율·고금리·저성장을 동시에 반영한 스트레스테스트 강화와 취약 업종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하다. 기업은 환율 1300원 복귀를 전제하기보다 1400원대 장기 고착을 기준으로 투자·조달·환헤지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의 고환율은 일시적이거나 순환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의 결과라고 본다"며 "높은 환율 수준을 전제로 투자·산업·기업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과 미국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의 격차가 원화 약세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경제성장률을 높여 환율을 안정시키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