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산모·중환자·암환자, 대체약 없는 필수영역부터 공백 현실화약가·원료·제조 기반 악화가 의료현장의 악재로 공급 재개와 품절 반복되는 악순환 속 안전진료 기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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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수약 공급망은 흔들릴 때마다 위기 징후가 드러났지만 그때마다 '일시적 품절'로 봉합되며 근본 진단은 뒤로 밀렸다. 최근 몇 년 사이 채산성 악화, 위해성관리계획(RMP) 강화, 제조 기반 노후화, 원료 조달 불안이 한꺼번에 겹치며 민간 중심의 공급 구조가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현장은 이미 수술실·중환자실·희귀질환 치료 영역에서 대체약 공백을 체감하고 있다. 뉴데일리와 메디팜스투데이는 이를 국가 보건안보 체계의 균열로 보고 '왜 지금 필수약이 무너지고 있는가', '공공과 시장은 어떤 방식으로 다시 책임을 나눠야 하는가'를 구조적으로 점검했다. 또 공급망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적·산업적 해법을 연속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소아진료를 비롯해 분만실, 수술실, 항암치료 등 의료현장의 핵심 영역 전반에 위기 신호가 커지고 있다. 약가·원료·규제·제조 기반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이 개선되지 않은 채 누적된 탓이다. 의료현장은 "필수약 품절 사태는 특정 품목의 문제가 아니라 진료 체계를 흔드는 구조적 위기"라고 평가한다.◆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흔들리는 곳 … 소아외래는 이미 비상 운영필수약 공급난의 충격은 의료체계의 가장 취약한 지점인 소아청소년과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드러난다. 소아는 체중·연령별 용량 조절이 필수적이며 정제보다 시럽·현탁액·흡입제 등 특수 제형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성인은 여러 대체약을 검토할 수 있지만 소아는 약효·맛·점도·흡수 패턴의 작은 차이만으로도 복약 순응도가 급격히 떨어져 선택지가 크게 제한된다.최근 수년간 해열제 시럽, 아목시실린·세파계 항생제, 천식 흡입제 등이 연쇄적으로 끊기며 소아 외래는 '상시 비상체제'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진료환경으로 고착화됐다. 특정 품목이 품절되는 순간 처방 전략 전체가 흔들리고 의료진은 약동학과 부작용 차이를 다시 검토하며 진료를 재조정해야 한다. 보호자는 '약이 있는 약국'을 찾아 헤매는 일이 반복되고 병원의 외래 동선도 크게 흔들린다.서울 소재 아동병원 원장은 "아이들의 약 문제는 단순히 약의 유무가 아니라 복약 가능성의 문제다. 달콤한 맛인지, 점도가 어떤지, 아이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지가 치료 성공률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품절→재개→다시 품절의 사이클이 반복되는데 다음 번이 언제일지 예측이 안 된다"며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했다.◆ 분만실·수술실까지 흔들 … "약 하나가 일정 전체를 멈춘다"소아 외래에서 시작된 충격은 곧바로 분만실과 수술실로 확산한다. 이 영역은 특정 약 하나가 없으면 시술·수술 자체가 중단될 수 있어 공급난이 즉각적인 혼란으로 이어진다.2024년 옥시토신 공급 중단 사태는 국내 분만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국내 생산 기반이 두 곳뿐인 상황에서 주요 제조사가 원료 확보 문제로 생산을 멈추자 전국 분만실의 일정이 한순간에 흔들렸다. 분만 유도와 산후출혈 예방이라는 필수 기능이 동시에 위협받았고 산모 안전까지 흔들렸다.정부가 약가 인상 등 긴급 조치를 취했지만 원료 단일화·낮은 약가라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다. 수술실 역시 마취제·근육이완제·진통제 등 기초 약제의 공급이 조금만 흔들려도 전체 수술 일정이 지연되고 안전성이 떨어지는 일이 되풀이된다.◆ 항암치료에서도 드러나는 '수익성 리스크' … 필수 항암제도 위태항암제 공급 불안정은 이미 반복적으로 확인된 구조적 문제다. 일례로 유방암 치료에서 중요한 약물 풀베스트란트(파슬로덱스)는 약가 가산 종료 시점마다 공급 축소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필수 항암제가 '수익성 논리 하나로도 공급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항암제는 치료 주기 하루만 늦어져도 생존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라며 "글로벌 제약사는 생산 수익성이 낮아지면 생산라인을 축소하거나 고가 신약 중심 전략으로 이동하며 구형 항암제 공급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낸다"고 말했다. 이는 필수 항암제 공급망 자체가 이미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희귀질환 치료제도 흔들린다 … 소마버트 중단의 여파희귀질환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화이자의 말단비대증 치료제 소마버트주(페그비소만트)는 제조원 생산 일정 지연으로 한시적 공급 중단이 예정됐다. 10mg·15mg·30mg 등 핵심 용량이 모두 영향을 받으며, 전체 5개 용량 중 정상 공급이 가능한 것은 20mg·25mg뿐이다.대체약 공백은 더 심각하다. 경쟁약으로 거론되던 노바티스 시그니포라르(파시레오타이드)는 이미 2022년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결국 의료진은 1세대 소마토스타틴 유사체나 도파민 작용제로 후퇴한 치료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약효 강도·반응성 측면에서 완전한 대체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치료 용량을 개별 조정해야 하는 환자들은 공급 지연의 위험을 그대로 떠안게 됐다. 현장은 "희귀질환 치료제조차 공급 예측이 어려운 시대"라며 우려를 드러낸다.◆ "약을 만들수록 손해 보는 구조" … 약가정책의 근본 실패의료계는 필수약 공급난을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 실패'로 본다. 의료계 고위 관계자는 "약품 공급이 부족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제약회사가 손해를 보며 약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근본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성분명 처방 등 우회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이어 "아이들에게 처방되는 해열제의 건강보험 약가는 20~30원 수준이다. 약국에서는 9000원, 1만원을 내지만 건강보험이 지급하는 가격은 몇십 원에 불과하다. 제약회사는 만들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 생산을 지속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결국 잘못된 약가정책이 공급난을 발생시킨 것이며 이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필수약 위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필수약이 끊기면 처방 전략은 바뀌고 환자 모니터링 부담은 증가하며 일정 지연은 병상 회전율을 떨어뜨린다. 약국·병원 간 재고 차이는 환자 접근성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소아·신생아·산모·중환자·항암 환자처럼 대체약이 없는 영역에서는 위험이 곧 환자 안전으로 연결된다.이번 필수약 위기는 '일시적 품절'이 아니라 진료체계 전반의 균열로 평가되고 있다. 의료계는 "지금의 위기는 내년에도 동일하게 반복될 것"이라며 정부와 산업계의 실질적 구조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