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만 겨눈 감사 … 정작 필수의료는 공백 검체위수탁·성분명·국립대 이관까지 … 현장 뇌관은 그대로 쌓여증원은 숫자일 뿐 … 한국의료의 진짜 균열은 지금 벌어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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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의사협회
    감사원이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 절차 하자를 수면 위로 올렸다. 의사 수급 추계의 불확실성, 형식적 심의기구 운영 등을 문제 삼으며 '흠결'을 강조했다. 이는 사후적 단죄에 가깝다. 의료계는 환영 논평을 냈지만 애석하게도 의료현장을 바꿀 실질적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증원 정책의 큰 축은 이미 이재명 정부에서도 유지되고 있고 그 필요성 또한 역대 정부가 공유해온 방향이다. 결국 감사원이 남긴 건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점검이 아니라 '책임은 과거에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다. 증원이라는 흐름은 바뀌지 않는데 그 사이 현장에서 구조적 난제들은 더 쌓여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감사원 결과를 근거로 지난해 증원 정책을 추진했던 조규홍 전 장관, 박민수 전 복지부 차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 장상윤 사회수석 등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미래 부족 의사 수를 시점도 다른 수치를 단순 합산해 부풀렸다는 감사원의 지적, 내부 분석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2020년 의정 합의에서 명시된 '재추진 시 협의'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문제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전 정권 단죄'가 지금 한국의료를 구하는 데 어떤 실효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당장 이재명 정부 들어 더 큰 충돌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데 과거를 다시 뒤져 무엇을 바로잡겠다는 것인지 되묻게 만든다.

    한국의료의 문제는 절차의 흠결이 아니라 구조의 붕괴다. 검체검사 위·수탁 개편, 성분명 처방 강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논란 같은 굵직한 쟁점들은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이재명 정부는 이 중 일부를 내년 3~4월까지 밀어붙이겠다고 하고 의료계는 "보상 없이 개편 없다"며 강경 기류를 드러냈다. 

    외부에서 보기에 온당한 행정 절차처럼 보여도 실은 일차의료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문제들이다. 당장 내일 환자를 보기 어려워지는 동네의원이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음이다. 의료의 토대가 무너지면 상급병원 쏠림과 같은 고질병을 고칠 수 없게 된다.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논란은 이런 혼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정부는 단 74일 만에 원포인트 개정으로 연내 이관을 밀어붙였고 9개 국립대병원은 곧바로 집단 반발에 나섰다. 이관 이후 무엇을 맡기고 어떤 재정·인력 계획으로 필수의료를 강화할지 청사진은 전무하다. 

    의료대란 이후 국립대병원을 떠난 교수는 217명, 그중 40%가 필수과다. 전공의 복귀율은 여전히 미진하다. 생존이 위태로운 병원에 부처만 바꾸는 방식의 구조개편을 얹는 것이 과연 정책인가 싶은 상황이다.

    이 와중에 또 다른 큰 흐름들이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논의, 지역필수의료법 등은 모두 '의대증원 이후 한국 의료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라는 과제를 풀기 위한 조건일 뿐이다. 

    정부는 전체 그림을 내놓지 않고 조각난 정책만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결국 지금의 정책 드라이브는 의료체계를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 결정적인 균열을 더 벌리는 방향에 서 있다는 것이 의료현장의 공통된 인식이다.

    현실을 보자. 한국의료는 개혁 대상이 아니었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을 몰이해한 정책이었다. 햄버거 반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1시간 이내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지금의 붕괴는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피과와 인기과, 수도권과 지방의료의 격차로 인해 발생했다. 여전한 졸속 정책들은 앞으로의 10년을 더 어둡게 만들 수 있다.

    의료계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의 의료정책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의사 사회 내부의 세대 갈등까지 키우고 있다. 수술방을 뛰던 선배 세대와 수련을 포기한 젊은 세대가 서로를 향해 '누가 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를 묻기 시작했고 의료현장 곳곳에서 작은 폭발음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외과·산부인과·소아과 의사는 줄고 남은 의사들은 수술 결과로 형사처벌을 걱정하며 수술방에 들어간다. 세계 어디에도 환자를 살리려다 생긴 결과로 형사처벌을 받는 나라는 없다. '떨리는 손으로 수술하지 않게 하는 것'이 필수의료를 지키는 첫걸음이라는 말은 진부한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현실이다.

    의료정책은 몇 달 단위의 속도전이 아니다. 지역의료·공공의료·필수의료는 10년, 30년 단위의 설계가 필요한 분야다. 전문가와 현장의 감각 없이 만들어지는 정책은 결국 환자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이 지점에서 의사들의 목소리가 직역 이기주의로 치부되는 일이 반복된다. 분명 비판받아야 마땅한 사안이다. 하지만 그들의 경고는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만들어온 경험에서 비롯된 집단 지성이라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 
     
    결국 이번 감사원 발표가 드러낸 것은 '절차의 하자'가 아니라 '정책의 빈자리'다. 증원은 숫자일 뿐 방향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료의 아키텍처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의료를 망가뜨리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서두르는 정책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