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9·10월 잇단 인하 뒤 12월도 인하 가능성 높아일본 금리 인상 신호에 … ‘엔 캐리 청산’ 공포 확산 인하·인상·동결 모두 부담 … 한은, 일단 '동결'로 환율·자본시장 안정 우선할 듯
  •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고환율과 가계부채, 경기 둔화로 이미 기준금리 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은 금리 인하, 일본은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국은행의 정책 운신 폭이 사실상 봉쇄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인하·인상·동결 어느 선택을 택해도 부작용이 불가피한 구조 속에서 한은이 움직일 수 없는 '고립 국면'으로 몰리고 있다는 평가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 연준은 최근 물가가 안정 흐름을 보이자 인하 속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발표된 9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오는 10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0.25%포인트 인하 논의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역시 인하 확률을 최근 80% 이상으로 반영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행은 오는 19일 중립금리 하단을 상향 조정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사실상 금리 인상 재개 기대를 키우고 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엔화를 저리로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 청산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블랙 먼데이’ 때도 BOJ의 금리 인상 신호로 캐리 자금이 급격히 회수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린 전례가 있다.

    문제는 이런 미국과 일본의 상반된 정책 전환이 한국을 정면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인하는 환율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일본의 금리 정상화는 엔 캐리 청산 충격을 촉발해 원화를 다시 약세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부담과 경기 둔화 등 국내 금융·실물 여건이 동시에 악화된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이미 내부 사정만으로도 기준금리에 손을 대기 어려운 처지였다. 여기에 미·일 통화정책까지 엇갈리면서 인하·인상·동결 어느 선택을 택하더라도 부작용을 감내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금리를 내릴 경우 곧바로 추가적인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이탈로 연결될 수 있고, 가계대출이 다시 빠르게 늘어 금융안정 리스크까지 키울 우려가 있다. 반대로 금리를 올리면 취약차주와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이 급증하며 연체·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 동결로 굳어지는 경우에도 물가 둔화 속에 실질금리가 오르는 '조용한 긴축'으로 작용하면서 '경기 방어 포기', '취약부문 부담 확대' 등의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 한은의 금리 동결 역시 선택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환경에서 유일하게 시스템 충격을 피할 수 있는 방어적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은 지난 11월까지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50%로 묶으며 4연속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한은이 정책 판단을 통한 경기 조절보다 일단 동결로 대응하며 환율·자본시장 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두 초대형 경제의 통화정책이 상충하는 상황 가운데 한국은행의 정책적 운신 폭이 그 어느 때보다 좁아진 셈"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충격 최소화에 집중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통화·재정·거시건전성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한은 입장에서는 현재 금리를 올리거나 내렸을 때 모두 리스크가 있어 당분간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계속 금리를 동결하며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