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 최대주주·주주대표·모건스탠리 임원 등 5명, 공정 입찰 방해·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고소“프로그레시브 딜 안 한다더니, 우리 가격 힐하우스에 전달해 역전” … 입찰 구조 공방 본격화우협 힐하우스는 중국계 자본 논란 … 국민연금, 출자금 회수·법적 대응까지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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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국생명
흥국생명이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매각을 둘러싸고 최대주주와 주주대표, 공동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 임원들을 형사 고소하며 정면 충돌 국면에 들어갔다.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으로 최고가를 제시했음에도 중국계 사모펀드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배경에, 이른바 ‘프로그레시브 딜’과 입찰가 유출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지스 측과 주간사, 힐하우스가 절차상 문제를 부인하고 있어 매각 과정 전반을 둘러싼 공방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흥국생명은 11일 오후 서울경찰청에 이지스자산운용 최대주주 손모 씨, 손 씨의 딸이자 주주대표 역할을 맡은 김모 씨, 모건스탠리 한국 IB부문 김모 대표 등 5명을 공정 입찰 방해와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흥국생명은 고소장에서 “입찰 구조를 왜곡해 특정 투자자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고, 자신들의 가격 정보를 이용해 매각가를 끌어올렸다”며 “자본시장 신뢰를 훼손한 중대한 행위”라고 주장했다.흥국생명이 문제를 삼는 핵심은 ‘프로그레시브 딜’이다. 이 방식은 입찰 과정에서 일부 후보에게 경쟁사의 가격 정보를 알려주며 추가 상향을 유도하는 구조다. 흥국생명은 본입찰 이전에 “이번 거래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는 설명을 매각 측과 주간사로부터 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신뢰하고 처음부터 1조500억원이라는 공격적인 가격을 써냈다는 것이다.실제 지난달 11일 본입찰에서 흥국생명은 1조500억원을 써내 가장 높은 가격을 적었다고 밝히고 있다. 경쟁자인 힐하우스와 한화생명은 9000억원대 중반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구도만 보면 흥국생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컸다.흥국생명은 여기서 판이 뒤집혔다고 본다. 고소장에 따르면 모건스탠리 측은 흥국생명의 입찰가를 힐하우스 측에 전달하면서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제안했다. 힐하우스가 이후 약 1500억원을 상향한 1조1000억원을 다시 제시했고, 결국 힐하우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게 흥국생명의 설명이다.흥국생명 관계자는 “최초로 최고가를 제시한 참여자가 당연히 가져야 할 협상 기회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가격 형성 과정과 경쟁 방식에서 지켜져야 할 공정성이 무너졌고, 이는 입찰 방해이자 자본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이번 분쟁의 무대가 된 이지스자산운용은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다. 지난해 말 기준 운용자산은 66조8000억원 수준이며, 9월 말 기준 부동산 수탁자산은 27조원으로 시장점유율 14.6%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연금 등 국내외 연기금 자금을 기반으로 성장해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도 깊숙이 관여해 온 만큼 단순한 매각 딜을 넘어 금융·정책·안보 이슈까지 한데 얽힌 ‘민감한 거래’로 평가된다.우선협상대상자로 오른 힐하우스를 둘러싼 시선도 엇갈린다. 힐하우스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베이징·홍콩·뉴욕 등에 거점을 둔 글로벌 사모펀드지만, 창업자 장레이 회장이 중국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국내에서는 ‘중국계 자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중국 고위층과의 관계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제기된 이력도 있어, 이지스 인수가 현실화될 경우 국가 안보 측면에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금융권 안팎에서 나온다.국민연금도 이지스 매각과 관련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지스자산운용에 맡긴 약 2조원 규모 출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매각 실사 과정에서 국민연금 위탁 자산 관련 정보가 잠재 인수 후보들에게 지나치게 많이 공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이를 “국가 기밀 유출에 준하는 사안”으로 보고 민·형사상 대응까지 테이블에 올려놓은 상태다.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힐하우스 측은 지금까지 절차상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주간사 측은 프로그레시브 딜로 전환하지 않았고, 힐하우스가 처음부터 1조1000억원 수준의 가격을 제시했다는 취지로 설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힐하우스 역시 “매각 주간사의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며 원론적 입장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입찰 과정과 가격 정보 공유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한편, 이지스자산운용은 금융회사인 만큼 인수자가 실제로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금력과 법 위반 전력뿐 아니라 대주주의 사회적 신용, 지배구조 투명성, 국내 금융시장과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까지 폭넓게 반영된다. 중국계 자본 논란, 국민연금의 강경 대응, 입찰 공정성 논란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딜이 장기전으로 흐르거나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