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ISA 육성'에 농협·하나 등 은행 영업 압박 속 현장 혼선증권이 장악한 ISA 시장 … 은행은 PB 압박으로 뒤늦은 추격코스피5000·머니무브 속 WM 조직만 이중 과부하장기투자 설계에 단기 KPI 적용 … 깡통계좌 전철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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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코스피5000 시대를 위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정책 도구로 전면 배치한 가운데, 정작 시중은행 현장은 장기투자 정책과 거리가 먼 단기 실적 경쟁이 재현되고 있다. 정책은 '장기절세·자본시장 육성'을 내세우지만, PB(프라이빗뱅커)들은 KPI·인센티브·순위표 압박 속에서 사실상 '판매 실적 전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연초부터 WM(자산관리) 조직에 ISA 개설·전환 목표치를 부여했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 ISA를 신설하고, 국민성장펀드·BDC 장기 투자자에 소득공제·저율 분리과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조치다. 은행 본점은 KPI 배점을 올렸으며 PB 평가표에는 월간 목표·분기 목표·전환 수치·일임형 실적 등이 새로 기입됐다.

    이 같은 드라이브의 배경에는 ISA 시장 구조상 은행이 열세에 놓인 현실이 깔려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ISA 가입자 719만명 중 613만명(85%)이 투자중개형으로 증권사가 장악했다. 은행·보험권은 신탁형·예·적금 중심으로 약 100만 계좌 수준(10~15%)에 그친다. 그럼에도 은행은 뒤늦게 'ISA 수복전'을 선언하며 PB 조직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ISA 목표를 못 채우면 평가가 끝난다"는 말이 돌고있다. 농협은행 WM 조직 내부에는 연초부터 ISA 목표치가 공유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영업점 PB는 "월 6~8건, 분기 20~25건을 채우라는 목표가 내려왔다"며 "ISA는 상담만 1시간 이상 걸리고 전환·세제·위험 설명까지 해야 해 단순 판매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하나은행도 ISA 일임형·모델 포트폴리오 라인을 전진 배치해 KPI에 반영하고 있다. PB 채널에는 실적 순위표·신규 계좌 달성 공지·인센티브 안내가 반복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해당 관계자는 "ISA는 올해 WM 부문의 중점상품 중 하나가 됐다"며 "이미 증권이 장악한 시장을 뒤늦게 쫓아가며 PB만 압박받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KPI 개편도 PB 부담을 키웠다. 올해 KPI는 '소비자보호·내부통제' 배점을 강화해 불완전판매 시 마이너스 점수를 부과하도록 개편했지만, ISA는 배점이 오히려 확대됐다. 일부 은행은 연금고객 지표를 신설하고 적립식·ISA를 전략영업 항목에 포함하며 배점을 80점에서 100점으로 올렸다. PB 입장에서는 보호·평가·수익·실적을 동시에 달성하라는 요구가 되는 셈이다.

    정책과 시장의 속도도 엇박자를 키운다. 최근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5000피 기대가 커지자 시중 자금은 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이동 중이다. 올해 들어 5대 은행 요구불예금은 52조 6000억원이 빠져나간 반면, 투자자예탁금은 90조원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100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저비용 수신 기반이 무너지고 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가운데, WM 부문 ISA만 유일한 '락인 플랫폼'으로 남은 것.

    과거 사모펀드 사태 때 지적된 '중점상품+KPI 판매 방식'이 ISA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ISA는 장기투자 설계를 전제로 세제 혜택을 설계했지만, 은행은 단기 KPI로 개수 실적을 추구하는 구조기 때문. 지난해 ISA 계좌 중 57%가 잔액 1만원 이하의 '깡통계좌'였던 점도 경고 신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ISA를 자본시장 육성으로 연결하려면 은행의 구조적 한계를 먼저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책은 장기투자 설계인데 현장은 단기 실적 모드인 상태가 지속되면 과거 사모펀드 때처럼 정책과 영업 전략이 따로 노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은행 ISA가 증권 ISA와 경쟁하려면 온라인 개설·전환·상품 접근이 가능한 단일 플랫폼 구조가 필요하다"며 "고객은 장기투자를 요구받지만 금융사는 단기 실적을 요구받는 구조에서는 정책 취지인 '국민 장기투자 풀'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