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산증인… 지역건설사서 국내 중견기업으로1983년 금남주택 설립…'3불 원칙' 자금리스크 최소화재계 20위권 대기업집단 등극…지역경제 대표인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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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창선 회장ⓒ중흥그룹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자 산증인으로 불리는 중흥그룹 창업주 정창선 회장이 지난 2일 별세했다.특히 정 회장은 지난 2022년 국내 대표 건설사인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중흥그룹을 재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면서 한국 건설업계의 한 축을 형성했다는 평가다.정 회장은 1942년에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10대 후반부터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며 업계 경험을 쌓았다. 이때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며 몸에 익힌 그는 현장 경험을 중시한 인물로도 유명하다.이 같은 행보는 그의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1983년 금남주택을 설립, 독자 경영에 나섰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중흥건설을 일궜다.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중흥건설은 '중흥 S-클래스'를 앞세우며 전국 주택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그는 업무용 외 자산은 사지 않고 보증도 서지 않으며, 특히 적자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는 수주하지 않는 '3불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중흥그룹의 자금관리와 리스크 최소화를 강조했다.실제 정 회장은 울산 주상복합 사업에서 440억원 손해를 감수하고 수주를 포기했는데, 이 같은 결정은 '적자 예상 프로젝트 수주 불가' 원칙과도 맞물린 것으로 분석된다.검소하고 소탈한 성품을 지닌 정 회장에 대한 미담 역시 유명하다. 중흥건설과 함께 사업하는 기업들에 '하청업체'라고 부르는 대신 '협력업체'라고 부른다. 과거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어릴 적부터 없이 자랐기 때문에 사치와는 거리가 거리가 멀었다"며 "웬만한 건 다 헐어 떨어질 때까지 걸쳐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했다.정 회장은 외형 대신 자체 사업 중심의 안정적인 운영을 택했다. 이에 불안정한 건설 경기 속에서도 비교적 탄탄한 재무 구조를 유지했다는 평가다.그의 경영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로 불릴만한 대표적인 사건은 대우건설 인수다. 중흥그룹은 지난 2022년 2월 KDB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하던 지분 50.75%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총 인수자금만 2조671억원으로 알려졌다.대우건설 인수 당시 정 회장은 임직원 처우 개선을 약속하며 중흥그룹과 대우건설 결합에 공을 들였다. 지난 2022년 5월 대우건설 노사는 임금인상률 10%에 합의했다.이 같은 조치는 대우건설 창사 이래 가장 높은 임금인상률로 중흥그룹이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이행한 첫 조치다. 기본연상 이외에도 현장근무자 처우 개선도 추진했다.노사는 국내외 현장수당을 직급별로 월 21만~29만원을 인상, 인사평가와 승진에서도 현장근무자를 우대한다고 합의했다.이와 함께 대우건설 모든 직원에게 2022~2023년에 격려금 200만원을 지급했다. 60만원이었던 복지포인트도 100만원으로 늘렸다. 대우건설 뿐만 아니라 중흥그룹 건설부문 임직원 임금도 12% 올렸다.중흥그룹은 대우건설 인수를 계기로 재계 20위권 대기업집단으로 올라서면서 호남 기반 건설사에서 전국적 영향력을 갖춘 그룹으로 변모했다.정 회장은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를 대표하는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광주·전남지회장과 중앙회 부회장,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건설업계와 지역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과학인재 육성을 돕기 위해 카이스트에 300억원을 기부했고, 2021년엔 평택 브레인시티 반도체 연구센터 발전기금으로 300억원을 약정했다.아울러 장학재단 설립과 꾸준한 기부 등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훈장과 대통령 표창 등을 받았다. 고향인 광주에 대한 사랑 역시 대단해 광주 지역 기업과 문화재단, 프로축구팀 등에 대한 후원을 이어가기도 했다.정 회장은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부인이 가사 도우미를 쓰지 않고 알뜰하게 살림하는 등 본인을 내조한 점을 높이 산다는 후문이다.그의 별세로 중흥그룹은 2세 경영 체제를 본격화하게 됐다. 현장 중심 경영을 내세우며 국내 건설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정 회장은 '현장형 기업인'의 상징으로도 기억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