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멈췄는데 한국만 '묻지마 접종' 강행정은경 복지부 장관, 당시 질병청장 책임론 무게 K-방역의 민낯, 유효기간 지나고 품질검사도 패싱
  • ▲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 2022년 1월 시민단체들이 코로나19 백신 강제 접종과 방역패스를 반대하는 집회을 열었다. ⓒ정상윤 기자
    ▲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 2022년 1월 시민단체들이 코로나19 백신 강제 접종과 방역패스를 반대하는 집회을 열었다. ⓒ정상윤 기자
    국민은 국가를 믿었다. 미증유의 팬데믹 공포 속에서 일상을 포기하고 부작용의 불안감을 누르며 기꺼이 팔을 내밀었다. 그것은 'K-방역'이라는 화려한 구호를 지탱한 국민의 숭고한 협조였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그 신뢰를 처참히 짓밟았다. 질병관리청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통계 수치를 맞추기 위해 국민을 '실험용 쥐'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신고된 코로나19 백신 이물질은 1285건이다. 곰팡이, 머리카락, 이산화규소 등 제조 공정상의 결함이 명백한 사례만 127건에 달했다. 상식적인 보건 당국이라면 즉각 해당 제조번호(Lot)의 접종을 중단하고 정밀 조사에 착수했어야 한다. 

    동일한 시기 모더나 백신에서 이물질이 발견된 일본은 우리와 180도 다른 길을 택했다. 후생노동성은 이물질 신고 직후, 오염 가능성이 있는 동일 제조번호 백신 163만 회분에 대해 즉각적인 접종 보류를 선언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백신 수급 차질 우려보다 국민의 안위를 먼저 챙겼다.

    그러나 한국의 질병청은 달랐다. 주무부처인 식약처를 패싱하고 제조사에만 슬그머니 알린 뒤, 그들의 '셀프 조사' 결과를 기다리며 접종을 강행했다. 그 결과, 오염 가능성이 농후한 '동일 제조번호' 백신 1420만 회분은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국민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곰팡이가 섞였을지 모르는 백신을 "일단 맞고 보자"며 밀어붙인 꼴이다.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2703명이 유효기간이 지난 백신을 맞았고 품질검사조차 거치지 않은 백신 131만 회분이 무방비로 투여됐다. 백신 관리의 기본 중의 기본인 유효기간 준수와 품질 검증마저 내팽개친 채 무엇을 위해 주삿바늘을 꽂았단 말인가. 이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권을 담보로 한 도박이다.

    이에 질병청은 "이물질이 신고된 백신 1285건은 현장에서 즉시 격리·보관돼 실제 접종된 사례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된 '1420만 회분'은 이물이 신고된 백신과 동일한 제조번호(로트번호)를 가진 백신의 전국 누적 접종량일 뿐 문제의 백신이 직접 접종된 수치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 K-방역영웅 칭송받던 정은경 장관은 응답하라

    뒤늦게 논란이 가중된 가운데 이 모든 방역 시스템을 지휘하고 '방역 영웅'으로 칭송받던 인물이 바로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현 보건복지부 장관의 책임론이 떠오르고 있다. 왜 일본과 달리 접종 중단 결단을 내리지 않았는지, 왜 절차를 무시하고 제조사 답변에만 의존했는지 자초지종을 밝혀야 한다.

    방역의 성과는 국민의 몫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치명적 결함은 오롯이 당국의 책임이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간다면 다음 팬데믹에서 어느 국민이 국가의 보건 행정을 신뢰하겠는가. 정은경 장관은 본인의 이름 석 자 뒤에 붙은 '영웅'의 무게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 본질은 백신 효용성 아닌 '국가 관리 체계의 신뢰'

    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 접종이 가져온 감염병 억제와 사망률 감소라는 공중보건학적 이익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고 강조한다. 대규모 접종 과정에서 행정적 사각지대가 발생했을 수는 있지만 이것이 백신 자체의 효용성이나 정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작동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한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 제조번호 하나에는 수백만 회분이 포함된 상태로 단 1건의 이물 보고로 전체를 폐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신고된 이물의 상당수도 시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무마개 파편 등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즉, 시스템적 위해성이 확인된 바 없으며 백신의 공중보건학적 이익이 행정적 사각지대보다 훨씬 크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번 감사원 결과의 핵심은 백신의 의학적 성분이 아니라 보건 당국의 투명하지 못한 행정 절차에 있다. 이물질 발견 시 식약처와의 긴밀한 공조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제조사의 자체 조사 결과에만 의존해 사후 처리를 진행한 점은 분명한 실책이다.

    질병청과 정은경 장관은 의학적 안전성 뒤에 숨지 말고 왜 '행정적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