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영 카톨릭대 교수(헌법학)가 동아일보 6일자에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서슬 퍼렇던 1980년대에 이른바 ‘땡전(全) 뉴스’라는 것이 있었다. 모든 TV 방송은 오후 9시를 알리는 시보가 ‘땡∼’ 하고 울리고 나면 뉴스 앵커의 첫마디가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했기 때문에 붙여진 시대 비판적 표현이었다.

    ‘국민의 방송’이 이렇게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자 1984년 전북 완주군의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회가 KBS 수신료(당시의 시청료) 거부운동을 시작하였고, 그 불길은 2년 뒤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놀라운 것은 법학자나 언론학자들이 아닌, 농민들이 수신료 거부운동을 먼저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수신료가 없어지기는커녕 KBS는 그해 12월부터 광고방송까지 하게 되었다. 충성심에 대한 대가였을까? 지금 KBS는 수신료 수입보다 광고비 수입이 훨씬 더 많은 ‘형식적 의미의 공영방송’, ‘실질적 의미의 상업방송’사가 되었다. 광고료는 광고에 나온 상품 값에 전가되며 결국 일반소비자가 부담한다. KBS가 국민에게서 수신료를 징수하면서 광고방송도 한다는 것은 국민이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중 부담뿐일까?

    세상이 바뀌면서 시청자들은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다. KBS나 MBC, SBS 같은 지상파 방송을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을 통해 유료로 시청하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정연주 KBS 사장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앞으로는 ‘인터넷은 물론 차량용 모니터 등을 포함해서 장기적으로는 휴대전화를 통한 DMB 방송’에도 수신료를 내게 생겼다. 도대체 KBS는 국민에게 몇 중 부담을 강요하고 싶은 것일까? 정 사장이 이런 발표를 하던 즈음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의 애슐리 하이필드 뉴미디어 및 기술부문 이사는 “국민에게 좀 더 봉사하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획기적으로 인원을 감축하는 동시에 1937년 이후 제작된 수백만 건의 프로그램을 온라인 시청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국민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즐겨 보는 BBC의 프로그램을 모조리 공짜로 보게 하겠다니? 그것도 수십 년 전의 것을 모두 콘텐츠화해서….

    BBC의 이런 발표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KBS의 시대착오적인 발상과 국민 무시적 태도, 영리 일변도의 경영에 화가 난다. ‘땡전 뉴스’ 이후 꼭 20년 만에 왜 또다시 수신료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지, “공영방송 KBS를 쟁취하자”는 운동이 왜 시작되는지에 대해 KBS는 생각해야 한다. 무늬만 공영방송인 MBC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도 수신료를 나눠 달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 그간 보여 온 정치적 예속성과 상업적 이해관계, 특정 집단의 편들기에 대해 뼈를 깎는 아픔으로 자성해야 한다.

    우리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KBS나 MBC 구성원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진실은 ‘전파는 국민의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헌법은 다른 나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지 않은 ‘소비자의 권리’(제124조)도 보장하고 있다. 게다가 ‘전파소비자’ 또는 ‘방송소비자’는 일반 공산품의 소비자와는 달리 생산원가 대비 가격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품질 대비 가격(수신료)을 계산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우리의 공영방송이 오늘날과 같은 과오를 50여 년 동안 거듭해 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방송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송위원회가 정파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선임되었고 방송위원들은 그 이해관계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어 있는’ 우리 국민은 이제 너무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