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칼럼니스트 변상근씨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가대하며 소개합니다. 

    기자는 본시 욕을 먹는 직업이다. ‘인기가 없어야(unpopular) 한다’가 자격요건의 으뜸으로 꼽힐 정도다. 이 때문에 ‘기자를 모두 죽여라’는 식의 기자 때리기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도 후일 당파적 정치언론에 환멸을 느껴 신문기사는 진실, 그럴듯한 것, 있음직한 것, 거짓의 네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세기의 논객’ 월터 리프먼은 ‘재능이 어중간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기자라고 깎아내렸다. 하버드의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 니먼 펠로십도 기자들에게 지적 능력을 보충시키자는 그의 건의가 크게 작용했다.

    전문 식견도 없이 나쁜 뉴스로 세상을 어둡게 하고, 추측 보도로 진실을 왜곡하며, 사명감보다는 권력과 돈과 명성 추구에 급급한다는 게 ‘죽여야’ 하는 주된 논거다. 한국의 기자들은 여기에다 서류를 빼앗고, ‘맛 좀 볼래’ 하며 군림하고,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비슷한 기사만 생산해 내는 ‘죄목’이 추가된다. 한국에는 발표저널리즘만 있고 진정한 저널리즘은 실종됐다는 언론학자들의 질타도 가세한다. 정부 부처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면 그 발표저널리즘마저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한국의 기자들은 이제 모두 죽어야 하나?

    필자는 지난 학기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글로벌 저널리즘과 한국 언론’을 강의했다. 뉴스 보도도, 기자도, 언론 경영도 급속히 세계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려는 작은 시도였다. 언론에도 글로벌 표준이 있는가? 있다면 한국은 어디쯤 와 있는가? 언론에 한국적 모델은 가능한가?

    세계적으로 정확·공정·균형의 ‘황금표준’은 존재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언론환경은 그 사회의 미디어 철학과 발전단계 문화관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선진과 후진을 가르는 현실적 기준도 없다.

    정부에 대한 언론의 공격은 한국만이 아니다.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유력 언론들의 ‘진보 편향’(liberal bias)은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을 20%대로 끌어내렸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언론을 인간과 같이 지내면서도 불시에 사나워지는 동물(feral beast)에 비겼다. 그러면서도 언론으로부터 아무리 거센 공격을 받더라도 총리직의 엄청난 특권에 비하면 작은 대가를 치르는 데 불과하다고 물러섰다. 우리 대통령과 수준 차를 느끼게 한다. 

    영국처럼 미디어시스템이 정교한 나라도 없다. 방송의 공익성을 BBC로 담보하면서 신문은 고급지에서 타블로이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허용한다. 더 타임스는 영국을 이끄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 데일리 미러는 자신이 영국을 이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 가디언은 자신이 영국을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영국을 소유한 사람이 읽는 신문, 더 선은 젊은 여성의 가슴사진이 매일 실리는 한 누가 영국을 다스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이라는 비유가 재미있다.

    대통령중심제 나라에서 정부 부처 기자실은 ‘정부를 감시하라고 국민들이 만들어 준 공간’으로 존중받는다. 주식회사 일본의 관-재계-언론 유착을 취재시스템의 선·후진 잣대로 재단함은 무모하다.

    언론은 사회시스템의 일부여서 뉴스와 사건은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관심도 설명의 틀에 맞추어 전달할 수밖에 없다. 이 주류 언론을 ‘제도언론’으로 매도함은 단견이다. 우리 대통령은 ‘대한민국 기자의 위신과 자존심을 그런대로 유지해준 것은 유신 시절 해직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수십 년간 묵묵히 일해온 대다수 기자의 가슴에 못질까지 했다.

    20세기의 위대한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은 “나는 리프먼 같은 철학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전하는 기자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발을 이용해 그 자초지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찾아내 정확하고 충실하게 전달하는 기자”임을 강조했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다. 사실을 진실로 규명해 가는 과정이 저널리즘이다. 기자는 행동의 세계와 전문가의 세계와 일반 대중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의 하나다. 질타하고 ‘대못질’해도 기자는 죽지 않는다. 노병처럼 그저 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