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설 선생 ⓒ 뉴데일리
천상기 경기대 초빙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회에선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이 참석, 축사를 했다.
이어 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가 배설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이병국 한서대교수, 황우권 대진대 학장, 안종묵 청주대 교수, 이용원 서울신문 기획위원이 참여해 패널토론을 벌였다.
1872년 11월3일 영국의 항구도시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배설 선생은 소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일본 고베에 와서 머물다 1904년 3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트리뷴지 특파원으로 한국에 왔다. 선생은 같은 해 7월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Korea Daily News’를 창간, 을사보호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등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기사를 잇달아 실어 고종황제와 우국지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국 정부의 압력과 경영난 등으로 1908년 5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1909년 5월1일 37세의 나이로 서거,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묻혔다.
배설은 숨을 거두기 전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이번 학술대회는 선생의 100주기를 맞아 그의 경력과 항일활동 등을 재조명하기 위해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정진석 교수는 “(배설은)국운이 다하여 나라가 위급하던 때에 신문을 통해서 민족진영의 항일운동을 지원했던 항일 언론인”이라고 업적을 기렸다.
학술대회에 이어 오는 5월8일 오전 11시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서 배설 서거 100주년 추모기념대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선 배설 선생의 자유언론사상을 기리고자 제정된 ‘배설 언론상’시상식이 함께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