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모두 미디어법이 어떻게 처리될지 잘 알고 있다. 이미 답은 나와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김형오 국회의장 직권상정 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고 민주당도 이런 절차를 이미 예견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자당 개정안을 한나라당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문방위)의 거듭되는 파행은 여야 모두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높다. 13일 전체회의를 소집했지만 여야 의원간 설전만 거듭하다 끝난 문방위는 14일 오후 2시 회의를 재소집했다. 여야 간사간 합의로 이뤄졌다.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여야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14일 오후 민주당 의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문방위 회의실 앞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간사와 민주당 전병헌 간사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오후 1시경 민주당 전병헌 간사와 이종걸 최문순 장세환 의원 등이 다시 문방위 회의장 앞을 봉쇄했다. 오전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김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할 것이란 얘기나 흘러나오면서다. 약속된 오후 2시. 한나라당 나경원 간사가 점거농성 중이던 민주당 전병헌 간사를 불렀다.

    주변에는 수많은 취재진과 카메라가 몰렸다. 갑자기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실랑이를 벌였다. 누가 들으라는 듯 목소리는 키웠다. 간사간 협의를 위해 회의장을 찾으며 약 10m 가량 걸었는데 두 사람은 내내 티격태격했다. 걸음걸이는 취재진과 보조를 맞췄다. 내용은 문방위 파행 책임 소재여부다.

    나경원 "이렇게 하면 안되죠"
    전병헌 "오전에 안상수 원내대표가 직권상정을 요구하겠다는 보도가 나갔기 때문이죠"
    나경원 "제발 약속을 지킵시다"
    전병헌 "직권상정 안하기로 해놓고 이중플레이를 하면 안되죠.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거면 상임위 논의가 무슨 소용입니까"

    두 간사가 약속이나 한 듯 목소리를 키우고 취재진과 보조를 맞춰 걸은 이유는 이날 문방위 파행 책임이 상대에 있다는 것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회의장에 들어가자 주변에선 "지금 간보는 거지?"라는 조소가 나왔다. 주변에 있던 여야 관계자도 두 사람의 설전을 "쇼"라고 했다. 90여분간 진행된 두 사람의 협의는 결국 결렬됐다.

    문방위 회의장 앞을 봉쇄 중인 민주당 의원들 옆에 한나라당 의원이 다가갔다. 양당 초선 의원들이 농을 주고 받았다.

    한나라당 의원 "오늘 밤 안 샙니까?"
    민주당 의원 "아니요"
    한나라당 의원 "밤 안새면 우리가 들어가서 (의사봉) 두드릴 거에요. 11시 50분에 들어갈건데"
    민주당 의원 "아이고! 약올리지 마요"
    한나라당 의원 "11시 50분에 우리 들어갑니다"
    민주당 의원 "격려금이나 내놓고 가요. 다음에 여야 바뀔지도 모르는데"

    문방위원장실에 대기 중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흩어졌다. 몇몇 의원들은 국회 본청을 나갔다. 이날 회의 역시 열리기 힘든 상황이고 여야 의원 모두 이를 알고있다.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은 "15일 레바논 파병연장동의안 부터 처리를 한 뒤에 논의해야지 지금 밀어붙이면 파병연장동의안도 못할 수 있다"고 말했고, 민주당 전병헌 간사는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부터 하라"고 요구했다. 여야 모두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문방위 회의장 앞에서 간간히 벌어지는 여야 의원들간 충돌이 '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김형오 국회의장을 찾아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의장 직권상정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의 직권상정을 공식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