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핫 이슈인 미·중 타이어 무역분쟁을 추적하던 중 깜짝 놀랐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인터넷 선전전(宣傳戰)에서 중국이 인터넷 종주국인 미국을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에 들어가서 '中美(중미)'와 '輪胎(타이어)' 두 글자를 치니 바이두 백과사전의 '中美輪胎特保案'(중미타이어특별보호조치사건)이 맨 위에 나타난다. 클릭을 하자 길고 상세한 자료가 나온다.

    맨 위 네모난 칸 속에 '목록'이라는 이름하에 8개 세부 항목이 한눈에 들어오게 요약되어 있다. '간략한 소개' '기원' '사건 진전과 데이터분석' '최근 진전' '각 분야의 반응'…. 매우 낯익은 형식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미국에서 시작된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구조가 꼭 같다. 전세계 인터넷 백과사전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온 위키피디아의 모양을 빌려 중국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바이두 백과사전은 미·중 타이어 분쟁을 '과학'과 '객관성'의 토대 위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방문객들이 알기 쉽게 날짜별 진행 상황을 도표로 잘 정리하고, 중국 상무부, 중국 외교부, 중국 고무공업협회뿐 아니라 미국 타이어공업협회와 세계무역기구(WTO)의 입장도 소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 신문과 영국 신문의 기사 원문도 잘 인용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객관적이지만 중국에 유리하게 쓰여진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띈다. 예컨대 마지막 결론 부분의 제목을 '특별보호조치의 부정적 영향'으로 잡고, 이번 미국 조치가 "현재 회복중인 세계경제에 나쁜 소식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단정한다. 또 "취임 이후 줄곧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왜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가(自食其言)"라고 비난하면서 끝낸다. '지식의 보고'인 백과사전의 과학적 형식을 이용해 '세련된 방식'으로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셈이다.

    미국 인터넷의 대응은 어떨까. 바이두 백과사전의 '원형'인 영문판 위키피디아를 찾아 'U.S.' 'China' 'tire'를 입력해 보면 '금호 타이어' '한국 타이어' 같은 타이어 회사 소개만 주욱 나온다. 영문판 구글에 들어가도 언론보도 목록만 길게 나올 뿐 잘 정리되어 설득력이 강한 백과사전 형식은 찾아볼 수 없다. 바이두나 위키피디아는 회원등록을 하면 사전내용 작성에 누구나 관여할 수 있는 다중(多衆) 참여방식이다. 그래서 중국이나 미국의 정보기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총성 없는 무역전쟁'의 인터넷 속보전에서 중국이 한 발 앞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미·중 무역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중국 사이트가 더 편리한 시대가 온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한국어 원문을 읽는 외국인도 점점 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톰 번 부사장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결정에 참고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한국어로 된 정보를 수시로 읽는다.

    '인터넷 지식 전쟁' 시대에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 인터넷 포털의 백과사전에 들어가서 '한일 무역 분쟁' '한중 무역 분쟁'을 쳐보면 체계적으로 정리한 항목이 전혀 없다. 대표적인 한·중 무역분쟁인 2000~2003년 '마늘 분쟁'은 A4 1쪽 분량에 그친다. 5개월짜리 '미·중 타이어 분쟁'이 바이두에 A4 7쪽에 걸쳐 소개된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국익이 걸린 이슈에 대해 중국만큼 체계적인 지식을 빠르게 제공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