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몇 환경전문기자와 함께 미국 정부 초청으로 알래스카를 다녀왔다. 여러 가지를 봤지만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동토(凍土·permafrost) 속 잠자는 탄소의 동향이었다. 얼어붙은 동토엔 어마어마한 탄소가 들어 있다. 여름철이면 식물이 자라났다가 겨울이면 죽어 땅속에 묻히는 사이클이 수만~수십만년 동안 반복돼왔다. 이 유기물들이 추운 날씨 때문에 채 분해되지 못한 상태로 땅속에 갇혀 있다. 온대지방 토양 속 탄소 함유량이 0.15%인데, 동토는 2.6%라고 한다.

    2006년 사이언스지(誌) 논문을 보면 지구 대기 속 탄소량은 7300억t이다. 바다엔 그 55배쯤 되는 40조t의 탄소가 녹아 있다. 식물 몸체에도 약 6500억t의 탄소가 들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탄소 저장고인 토양에 1조5000억t쯤 되는 탄소가 들어 있고 그 중 30%가 동토 탄소다.

    석탄·석유의 화석연료가 타면서 매년 65억t의 탄소가 대기로 배출된다. 동토의 탄소 저장량은 그 100배쯤 된다. 그것이 한꺼번에 풀려 나오기라도 한다면 재앙이 된다. 땅속 석유나 석탄은 일부러 캐내지만 않으면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다. 동토 탄소는 그렇지가 않다. 온난화가 진행되면 적도보다 극지방이 더 빨리 더워진다. 동토가 녹기 시작하면 표면 유기물질부터 분해된다. 이것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면→온난화가 가속되고→동토 기온이 더 올라간다. 동토는 더 깊이 녹아 들어가고→더 많은 탄소가 풀려 나오고→온난화는 더 빠른 속도로 증폭된다.

    동토에선 기온이 오르면 순식간에 늪지가 형성된다. 땅속 얼음이 녹아 분해되다가 만 유기물과 팥빙수처럼 뒤섞인다. 그 유기물은 산소 부족 상태에서 썩어 메탄가스를 토해낸다. 메탄가스는 열 흡수 능력이 이산화탄소의 23배다. 동토에서 나오는 메탄이 한 해 5000만t이다. 이런 일들이 겹쳐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온난화는 걷잡을 수 없는 길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 동토 연구자들 주장이다. 비탈길을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람 힘으론 어찌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동토에 직접 가본 건 좋은 경험이었다. 뾰족한 꼬챙이 같은 도구로 땅을 찔러보니 50㎝쯤 들어가서 시멘트처럼 단단한 동토에 닿았다. 삽으로 파보니 진흙이 섞인 얼음 덩어리가 나왔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은 2007년 4차 기후변화 보고서에서 알래스카의 경우 이런 동토가 50~60m 깊이로 형성돼 있고 1990년대 이후 매년 4㎝씩 녹아왔다고 밝혔다.

    알래스카대학 페어뱅크스캠퍼스의 동토 전문가 로마노프스키 교수는 신중한 편이었다. 연구가 부족해 동토가 얼마나 빨리 녹을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장을 가본 감각으로도 지하 수십m씩 꽁꽁 얼어붙은 동토가 쉽게 녹기야 하겠느냐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최근 빈발한다는 산불이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건조해지면서 알래스카에선 지난 50년 사이 산불이 2배로 늘었다. 알래스카 땅 절반은 흑가문비와 자작나무로 가득 차 있다. 그 넓은 땅에 있는 거라곤 나무뿐이다. 여기에 벼락이 내리치면서 불이 난다. 2004년 산불 때 2만7000㎢(약 81억평)가 탔다. 페어뱅크스도 한 달 이상 연기로 둘러싸였다고 한다. 산불로 나무가 타면 탄소가 방출된다. 동토를 덮고 있는 이끼류, 지의류마저 사라져 태양이 직접 토양 표피에 닿는다. 동토는 더 빠른 속도로 녹게 된다.

    로마노프스키 교수는 "동토 연구를 35년간 했는데 동토가 온난화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를 20년 전엔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10년 전부터 주목하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최근 5년 사이 관심이 뜨거워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