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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의 대형 사업장을 비롯해 전국 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민주노총 탈퇴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맞물려 강성이던 민주노총에 온건파 지도부가 등장하는 등 노동계에 변화 움직임이 포착된다.
나아가 민주노총.한국노총의 양대 노총 구도 속에서 이들과 차별되는 제3의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새희망 노동연대'가 출범하면서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된다.
◇잇따른 민주노총 탈퇴 = 창원의 공작기계 생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 노조는 지난 5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전체 조합원 496명 중 463명이 투표에 참여해 330명(71.3%)이 민주노총 탈퇴에 찬성표를 던졌다.
건설기계 제작업체인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노조와 방산업체인 두산DST 노조도 지난 3일과 지난달 26일 각각 조합원 투표를 해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노조로 새롭게 출발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노조 이정훈 위원장은 "회사와 무관한 정치적 투쟁에 나서는 상급단체에 대한 조합원들 불신이 컸고, 외국 주주들이 한국의 적대적 노사문화를 보며 투자를 꺼렸다"며 "상생하는 노사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민주노총 탈퇴 배경을 밝혔다.
공공부문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도 이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 노조는 지난 4일 민주노총 탈퇴 여부를 놓고 벌인 임시총회 조합원 투표에서 78%의 찬성률로 탈퇴를 결정했다.
농림수산식품부 노조 산하의 국립식물검역원 지회와 국립종자원 지회도 지난 1월 말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중앙부처 노조의 독자적인 노조로 새로 출범한 '중앙행정기관공무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공무원노조 해운대구지부가 전국 자치단체 지부 가운데 처음으로 민주노총과 통합공무원노조를 탈퇴했다.
울산지역에서는 지난 1월 전국운수산업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전국항만예선지부 울산지회가 민주노총을 탈퇴했고, 울산시선거관리위원회 조합원 48명과 울주군의 항만물품보관업체 태영호라이즌 코리아터미널지회, 폐기물처리업체 ㈜NCC 노조도 지난해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인천에서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인천지하철(현 인천메트로)이, 경기지역에서는 KT(성남)를 비롯해 쌍용자동차(평택), 대원스틸(시흥), 한성레미콘(김포), 부천운수(부천) 등 6개 사업장 노조가 지난해 민주노총과 결별했다.
◇'새희망 노동연대'와 온건파 민주노총 지도부 등장 = 이런 분위기 속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과 차별되는 제3의 노동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노동조합 연대인 '새희망 노동연대'가 이달 초 출범했다.
여기에는 현대중공업과 서울메트로 노조 등 전국 40여개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새희망 노동연대는 "노동운동의 청렴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섬기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노동운동을 지향한다"는 취지문 아래 국민에게 신뢰받는 노동운동, 투쟁보다 정책ㆍ공익노조 지향,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노조로 거듭날 것을 결의했다.
첫 공식 활동으로 노동절인 5월 1일 전국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목욕과 미용 봉사활동을 벌이는 계획을 잡고 있다.
새로운 노동세력 등장에 앞서 민주노총에서도 온건파 지도부가 선출되면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월 새 위원장으로 온건파인 김영훈 전 철도노조 위원장을 선출했다.
김 위원장은 42세로 역대 최연소 위원장이고 민주노총 내 온건 의견그룹으로 꼽히는 '국민파'의 지지를 받았다.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이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합리적 온건노선을 지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일 올해 민주노총 투쟁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 이례적으로 투쟁복 대신 재킷 차림으로 참석해 붉은 머리띠나 삭발을 하고 나타나던 기존 강성 투쟁 위원장들의 이미지를 일단 누그러뜨렸다.
◇'국민과 가깝게'..노동운동 진화하나 =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이달 초 열린 노사관계학회 간담회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여 국민에게 더 가까이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 강성 투쟁 기조의 민주노총식 노동운동에 변화를 예고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김성대 사무처장은 "민주노총 내부에서 현장 조직과의 끈끈한 연대와 결합을 가져오지 못했다"며 대형 사업장 노조의 잇따른 민주노총 탈퇴 원인을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노동단체의 출범이 기존의 노동운동 방식에 공감하지 않는 노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강경 일변도의 투쟁방식에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인제대 김성수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노동운동을 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라지면서 강경 투쟁에 대해 냉정한 시선이 쏟아졌다"며 "시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유연한 노동운동 목표와 수단이 선택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나치게 정치지향적이지 않고 노조원의 실용적 이익을 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어야 할 시기"라며 "앞으로는 단일 세력의 노동운동이 아닌 각 세력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시대 흐름에 맞는 노동운동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하대 윤진호 경제학부 교수는 "새희망 노동연대의 출범은 기존 양대 노총에 불만을 가진 노조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정부에서 노동계의 경쟁 관계를 부추기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윤 교수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기존 노동세력에 대한 개혁요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양대 노총은 이를 개혁의 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이 변화의 기로에 선 것으로 보았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