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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시대 이후에 독립한 나라 중에서 한국은 단 기간 내에 민주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성공사례에 속한다. 우리나라가 짧은 세월 동안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문근찬 한국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뉴데일리 첫째, 현재 북한의 정치체제를 떠 올린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일등 공신은 역시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데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국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남 지역에 자유민주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실기했다면 어떤 결과가 되었을지 상상해 보면 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냉전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변방의 작은 나라에 군인들을 파병하여 큰 희생을 치른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군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최근 백선엽 장군의 연재 글에 잘 나와 있듯이 우리의 선배 군인들의 나라를 수호하기 위한 분투가 있었다.
둘째는 경제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만약 경제성장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경제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한국은 이런 점에서 탁월했다.
이번 지진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티는 1804년에 일찌감치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만 사는 모습은 최빈국을 아직 면치 못하고 있고, 가난하다 보니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전쟁 후 필리핀,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들은 우리보다 경제가 나았었지만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이고, 그러다 보니 그 나라들은 민주주의 사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즉,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우선 어느 정도 잘 살아야 자격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예로서 영국, 미국, 일본 같은 나라를 보면 알 수 있다.셋째는 안보에 문제가 없어야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섬나라든지 또는 별도의 대륙이든지 외세의 침략에서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예도 역시 영국, 일본, 미국을 들 수 있다. 프랑스는 경제력은 꽤 있지만 유럽 대륙의 중앙에 있다 보니 외세 침략에 자유롭지 않아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60여 년 간 가상적으로 섬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한국 사이에 바다 같은 작용을 한 것이 북한이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완충지대로서 북한이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는 늘 안보의 위협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북한은 실제적인 안보 상의 위협이 될 수 없었는데, 이는 휴전 후에 한국 뒤에는 역시 미국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그야 말로 ‘결정적 요인’이라 할 만 하다. 그 세 요인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인을 들면서 민주투사를 뺀다면, 민주투사의 노고에 대한 평가는 너무 소홀하다며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옥고를 치르는 등 고생한 점을 폄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역할이 ‘결정적 요인’인지 솔직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예를 통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일례로서 아이티는 1804년 독립 후 200 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민주 투사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민주국가가 될 수는 없었다. 앞에 언급한대로 가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는 군주제를 종료시킨 대혁명까지 일으켰던 나라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는 못했다. 나폴레옹이 외세 침략을 막아야 한다면서 스스로 다시 군주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안보 위협 때문에 민주주의를 할 수 없었던 예라고 할 수 있다.이상의 논의에 따라, 우리가 지금 북한의 동포와 같이 비참한 지경에서 살지 않고 그나마 자유를 향유하며 살 수 있도록 한 ‘결정적 요인’과 관련하여 세 영웅을 꼽는다면, 첫째는 민주국가를 건국하고 외교로써 안보를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 둘째는 경제성장의 기틀을 다져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게 한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셋째는 육이오 남침과 그 이후의 안보 위협을 막아 준 미국이라는 우방을 들 수 있다. 이 특이한 결론에 대해 이념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관적인 선호의 문제를 떠나서 위 세 요인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