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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안 김미화씨가 KBS에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발언하고, 자신이 KBS에 계속 출연할 수 없는 것이 블랙리스트 때문이라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KBS 조대현 부사장은 블랙리스가 없고, 김미화씨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내레이터로 출연했었다고 밝혔습니다.
뒤 이어 진중권, 문성근, 유창선씨는 자신들도 김미화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지원 사격을 나섰습니다. 이들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다가 돌연 취소 됐거나, 방송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도중하차당했다고 말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김제동, 윤도현, 정관용씨 등 정권과 색깔이 달라 보이는 방송인들이 줄줄이 하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김미화씨의 "블랙리스트 소동"을 보면서 소란을 피울 일도 아닌 것을 공연스레 소동을 피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 출연은 수많은 시청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출연자의 능력, 자질, 성격, 가치관, 정치성향 등이 종합되어 결정됩니다.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미화씨 같은 스타일의 연예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가벼운 것 같고, 더구나 대담 프로 같은 것은 그의 지적 수준이나 자질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편성국장이나 사장이라면 김미화씨 같은 스타일의 방송인을 실무자들이 기용할 경우 빼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김제동씨가 방송에서 도중하차 한 뒤 정치적 압력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저는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김제동씨가 재주는 있어 보였으나 제 눈에는 격이 떨어지고 경망스럽고, 언어와 행동이 너무 작위적이었습니다.
이런 판단은 제 개인적인 가치관과 취향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판단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제동씨나 김미화씨가 한 때 방송에서 각광을 받을 때 "왜 저런 스타일의 사람들이 한국 방송계에서 조명을 받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한국인들의 정서와 문화의식의 반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방송에서 하차되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잘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의 코미디나 방송 연예인들의 격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텔레비전을 보면 방송 연예인들의 언어가 너무 조잡하고 유치하고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김제동씨나 김미화씨 같은 방송인들은 한 때 인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한국은 새로운 인재를 통해 좀 더 격이 있는 방송을 창출해야 할 것입니다.
김미화씨가 방송에서 하차한 것이 저 같은 사람에게는 시원하지만 애석해 할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의 도중하차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때,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은 분노를 느낄 것이고, 김미화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은 동병상련의 감정 표출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태 또한 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품위가 있고 격이 있는 사람은 다소 억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렇게 경망스럽게 끓는 냄비 물처럼 바글바글 거리지 않습니다. 말을 아끼고 행동을 진중하게 합니다.
나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김미화씨 처럼 당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근거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 사람들의 도중하차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뭐 그리 잘못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화려한 조명을 받았고 인기를 누렸습니다.
정권이 바뀌어서 정치 문화가 달라졌으면 인기를 반납하고 조용히 물러서는 것도 인간사의 예의입니다. 정치적 신념과 용기는 항상 불이익과 혜택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습니다. 내 신념과 반대자가 집권을 하면 불이익을 받아야 하고, 내가 지지한 사람이 득세하면 혜택을 받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권력이 바뀌었다고 해서 방송의 방향과 프로그램과 출연진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그런 행태가 후진적이지만, 과거의 방송이 권력의 영향으로 운영되어 왔다면 그것을 시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 때 연예인이 전두환을 닮았다고 해서 방송 출연을 못했던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진보 정권이 권력을 잡은 뒤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진보적 사람들이 방송계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불가피한 과정이었고, 그들의 교정에 남용이 있었기에 보수 정권이 그것을 교정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나도 전두환 시대 때 블랙리스트에 오른 적이 있지만, 독재정권의 횡포에는 분노를 느꼈으나 내가 블랙리스트에 있고 그것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에는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것은 자기 신념과 행동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연예인들이 특정 정치인 지지 발언을 하고, 행사에 사회를 보거나, 정치의 홍위병이 되는 것은 그것에 대한 대가를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특정 정치 세력의 혜택을 받고, 인기와 찬사를 얻었기 때문에, 그 권력이 바뀌면 양지에서 음지로 가야하는 것은 자연스런 것입니다. 그것이 두렵거나 싫으면 특정 정치인 행사에 끼어들지를 말고, 정치적 발언을 삼가야 합니다. 그 정도 대가도 치룰 각오를 하지 않고 정치적 발언을 했다면 너무 기회주의적입니다.
'블랙리스트'(blacklist)란 어휘가 불행했던 시대에 부당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블랙리스트는 나쁜 말만이 아니고, 인간사 어느 곳에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부도 수표를 많이 내는 사람들의 블랙리스트가 있어서 이들이 가게에서 체크를 내면 거절당하고, 성범죄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적은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어 지역사회에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의사단체에서는 의사의 실수를 꼬투리 잡아 막대한 돈을 청구하는 환자의 블랙리스트를 발표했고, 유럽연합(EU)에서는 EU에 착륙을 금지시키는 비행회사 블랙리스트가 있고, 미국에는 테러 지원국 리스트도 있습니다.
좌파들이 옹호하는 북한은 극우 블랙리스트가 있어서 이들에게 입국 비자를 주지 않습니다. 미국 FBI(연방수사국)나 CIA(중앙정보부)는 각종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합법적 기관으로, 반미 과격 발언을 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릅니다. 여기에 오른 사람은 어떤 경우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블랙리스트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화이트리스트(whitelist)가 있습니다.
바람직한 사람들, 우호적이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 명단입니다. 인터넷 발달로 정크 메일이 이메일을 오염시키는 현실에서 스팸(spam)을 걸러내고 정화시키는 필터 장치가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구분해서 보내기도 합니다.
언론사에서 블랙리스트 명단을 문서화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성문화 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판단력이 명쾌한 사람이 누구인지, 필진 화이트 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에게 원고 청탁을 하거나 방송출연을 부탁합니다.
반대로 이런 사람은 될 수 있으면 방송에 출연시키지 말고 글을 부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명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명예훼손을 시키기 쉬운 사람, 과격한 글을 쓰는 사람,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 정치성향이 강한 사람은 방송출연이나 원고청탁을 하지 않도록 언론 책임자는 지시할 수 있습니다. 실무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아무나 청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방송에 출연하거나 글을 쓰면 독자나 청취자가 떨어지고, 피곤해지고, 격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KBS가 출연자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소동칠 일이 아닙니다. 지금 법석을 떠는 사람들이나 언론사들도 나름대로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어디나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가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적 매체가 극우의 글을 실어주지 않고, 보수적 언론이 극좌의 글을 게재해 주지 않는 것은 의미상으로 그들 언론사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명성 있는 언론사는 자기 색깔을 내면서도 반대 의견을 반영합니다.
진보적 신문사인 뉴욕 타임즈가 저명한 보수 논객인 윌리암 사파이어(William Safire) 글을 오랫동안 실어 주었던 것은 뉴욕 타임즈의 긍지였고 자신감이었습니다. 사파이어가 세상을 떠난 뒤 뉴욕 타임즈는 여전히 또 다른 보수 논객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글을 정기적으로 게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폭스(FOX) 방송처럼 보수를 표방하는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늘 보수와 진보의 의견에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 방송사가 김제동씨나 김미화씨를 그만 두게 한 것은 복합적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맡는데서 오는 피로감을 덜기위해서 일수도 있고, 능력과 질이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일수도 있고,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방송사가 출연진을 교체시킬 수 있는 것은 고유의 권한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교체시킬 수 있습니다. 정서와 분위기가 방송사와 맞지 않으면 팀워크와 제작진 호흡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탈락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정치성향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정권의 철학이 바뀌었는데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영 방송에 성향이 다른 연예인이 나와서 프로그램의 분위기와 방향을 그르치게 할 때 이들을 탈락시키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고 필요한 것입니다.
후일에 정권이 바뀌면 이들은 다시 기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정치적 성향을 선택했으니 그들의 진퇴가 정치적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억울하면 평소에 정치적 성향을 보이지 말고 순수 방송에 충실하면 될 것입니다.
김미화씨가 트위터로 무슨 투사가 된 것처럼 비분강개하면서 "대한민국 만세!" 라고 띄운 것은 역시 코미디입니다. 그냥 조용히 실력을 쌓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스스로의 격을 높이는 것입니다. 김미화씨 행동을 보니 앞으로 방송 출연을 하기에는 격이 한참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KBS가 일개 연예인을 상대로 고소를 하는 것도 대 방송사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김미화씨의 발언이 사실 무근이고 허위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언론사의 격입니다. 김미화씨가 근거 없는 말을 경솔하게 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대 방송사가 일개 연예인과 맞상대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방송사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말 억울해도 고소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