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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나 지금이나 광고주들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설득할 방법을 찾아왔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출현한 이후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놓은 광고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인터넷 BBC 북미 판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혁신적으로 바꾸어놓은 광고 여섯 편을 선정해 그 광고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드비어스 (DeBeers)
다이아몬드 회사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유일한 약혼의 상징’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했다.
1948년 드비어스가 시작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 캠페인은 20세기 들어 가장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꼽힌다.
19세기 문학 전체를 찾아봐도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혼 때 주고받는 얘기는 없다고.
다이아몬드의 견고함을 사랑의 영원함에 빗댄 드비어스의 캠페인은 서구의 문화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2. 폭스바겐 (Volkswagen)
비틀은 미국인들에게 맞지 않는 차였다. 막 2차 대전을 마친 차에 독일인들이 만든 차를 타고 싶을 리 만무했다. 또한 미국인들은 크고 강한 차를 좋아했다.
더욱이 미국의 자동차 업계는 막 항공산업에 눈을 돌리던 차였다. 폭스바겐의 비틀은 한물 간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1959년 폭스바겐은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 캠페인은 폭스바겐의 단점을 고의로 드러내는 전략을 시작했다. 광고 전문지 애드 에이지의 밥 가필드(Bob Garfield)에 의하면 이때부터 광고에 유머와 위트, 아이러니가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3. 말보로 맨 (The Marlboro Man)
사실 말보로 맨이 광고업계 최초의 아이콘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연상하는 붉은 옷의 산타클로스야말로 1939년 코카콜라가 성 니콜라스의 전설에서 차용한 최초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맥도널드 사의 로널드 맥도널드는 너무나 유명해져서 맥도널드 회사 이름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말보로 맨은 그 이상을 달성해냈다. 남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보로 맨이 되고 싶게 만든 것.
1955년 말보로 맨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불과 2년 사이 말보로의 판매는 무려 300% 증가했다.
애드 에이지의 밥 가필드는 ‘제품 자체보다 더 중요해진 아이콘’이라고 말보로 맨의 가치를 설명했다.
말보로 맨의 모델이 되었던 배우 세 명은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 중 한 명은 제조사인 필립 모리스를 고소했고, 사람들은 말보로를 ‘카우보이 킬러(Cowboy Killers)'라 부른다고.
4. 나이키 (Nike)
사실 운동화의 겉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이다.
오리건 주에서 시작한 작은 스포츠웨어 업체가 스포츠업계의 거인 나이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영리한 광고 전략 덕분. 나이키의 날개 모양은 이제 브랜드 이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뿐만이 아니다. 농구선수 마이클 조단(Michael Jordan)과 맺은 계약은 아마 광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계약으로 꼽힐만하다.
1988년 ‘Just Do It'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나이키는 ’어떤 디자인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idea)‘으로 성장했다고 밥 가필드는 말한다.
5. 압솔루트 보드카 (Absolut Vodka)
드비어스와 압솔루트 보드카의 공통점은? 바로 예전에 없던 시장을 새로이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1981년 압솔루트 보드카는 아주 단순한 캠페인을 시작, 30년 동안 계속해오고 있다. 그저 독특하게 생긴 병 모습과 함께 "absolute"라는 말을 변형했을 뿐이다.
이전에는 보드카 자체를 광고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고급 보드카 산업도 존재하지 않았다.
밥 가필드에 의하면 압솔루트 보드카는 ‘상품 자체를 배지 브랜드(badge brand)'로 만든 사례라고.
압솔루트 보드카로 인해 현재 고급 보드카 시장은 크게 확장되었다. 오늘날 많은 고급 보드카 브랜드들은 모두 압솔루트에 큰 빚을 진 셈.
6. 린든 존슨 캠페인 (President Lyndon Johnson)
오늘날 미국의 선거 캠페인은 수조 억 달러의 산업이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미국의 아침(It's Morning in America)'나 공화당의 ’윌리 호턴(Willie Horton)'과 같은 캠페인은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까지 ‘데이지 광고(Daisy ad)'만큼 기억에 남고 파괴적인 효과를 가진 광고는 없을 것이라고.
한 어린 소녀가 들에서 꽃을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다. 소녀가 하늘을 바라보고 카메라가 소녀의 눈을 줌인 하자 소녀의 눈동자 속에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이 비춘 것이 보인다.
그리고는 “(투표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기엔 그 위험이 너무 크다”며 린든 존슨에게 투표하기를 촉구한다.
이 광고는 너무 오싹한데다가 공정치도 못하다. 하지만 이 광고는 현재의 ‘비난 광고’로 가는 길을 닦았다.
사실 이 광고는 유료 매체로 단 한 번 방송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여러 뉴스 프로그램에서 방송하고 신문 및 잡지에서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즉 무료로 홍보 효과를 거둔 것.
그런 점에서 이 광고는 무료 홍보의 개념이 시작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7. 그 외 기억에 남을 만한 광고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애플의 1984 광고는 단 한 번 상영됐을 뿐이지만 애플을 “거대하고 사악하며 독재적인 정보업계의 빅 브라더 - 밥 가필드에 의하면 IBM - 에 대항하는 ‘다윗’으로 각인시켰다.
1980년 당시 15세였던 브룩 실즈(Brook Shields)는 ‘나와 캘빈 클라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아세요? 아무 것도 없어요“라는 대사로 논란을 일으켰다.
어린 소녀를 지나치게 성적으로 이용한 본 광고는 ‘충격광고’의 원조로 꼽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