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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미·중을 비롯한 관련국들을 상대로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요청에 대해 식량배분의 불투명성과 객관적 현황평가 자료의 부족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뉴욕채널 등을 통해 미국에 인도주의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요구했으며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대규모 쌀 지원을 요청했다.
일례로 북한 정찰총국 소속으로 알려진 리호남은 이달 초 베이징에서 남측 민간인사를 만나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오죽하면 중국에 위화도나 황금평을 내주겠느냐"며 식량지원을 호소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위화도와 황금평은 북한이 중국과 개발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압록강 하류의 섬이다.
리호남은 안기부 대북공작원으로 알려진 '흑금성' 문건에도 등장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남측 민간인사의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 필요성 언급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전언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미국 뉴욕채널을 통해 인도주의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해줄 것으로 요구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 등 여러 나라에 식량지원을 요청하는 한편으로 식량을 실제 구하러 다닌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열린북한방송은 전날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모든 외교역량을 총동원해 해외로부터 식량 80만t을 입수하라는 지시가 지난해 12월 말경 떨어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부 당국도 북한의 식량 사정 등이 심각한 상황임을 시사했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전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협의회장 합동회의에서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 굉장히 어려운 투쟁을 하고 있다"며 "특히 연평도 도발 이후 지난 석 달 동안 북한의 쌀값이 두 배 정도 오르고, 환율도 두 배 오를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소개했다.
대북 매체들도 "군부대에 식량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집단 탈영한 군인들이 주민들의 물건을 강탈하는 일까지 빈발하고 있다", "북한이 주민들을 상대로 군량미를 다시 걷고 있다" 등 심상치 않은 북한의 식량난을 전하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 핵실험 등에 따른 유엔 안보리 제재와 우리 정부의 5.24조치 등으로 돈줄이 차단되면서 식량난을 비롯해 상당한 압박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지난해 말 내놓은 '2011년 정세전망'에서 "이상저온 현상과 수해에 따른 생산 감소와 국제사회의 지원 감소, 식량 유통 체계 혼란 가중 등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소는 또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지난해(414만t) 대비 20만~30만t 감소한 380만~390만t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와 추가도발 방지 확약,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등을 확인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대북 쌀 지원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지난해 10월 개성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우리 측의 이산가족정례화 요구에 대해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의 지원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 정도의 대규모 지원은 인도주의적 범위를 넘어선 정치적 사안이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특히 일각에서는 북측이 공언한 2012년 강성대국을 앞두고 비축을 위해 식량 확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식량 확보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먹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지원되는 쌀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분배의 투명성이 확보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대규모 식량지원이 북한의 자생적 시장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쌀이 지원됐을 경우 북한의 배급체계가 복원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북한 당국의 시장통제가 강화돼 시장 활성화를 통한 북한 내부의 변화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입장에 공감하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부와 민간차원의 인도적 식량지원 재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견을 타진했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미국도 대규모 대북식량 재개에 대해 부정적이며 우리 정부와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지난 26일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 정부가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한 정보와 상황판단을 일정하게 공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