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OO에 살아요" 톱스타 등장 CF, 되레 이질감 부추겨
  • 눈으로 보면
    평범한 주차장
    경험해 보면
    놀라운 주차장

    차이는 10cm
    겨우 10cm 넓혔을 뿐인데
    좁은 곳에 주차해 본 분들에겐
    매우 큰 차이, 10cm

    고집스러운 생각이 만드는 차이
    10cm의 진심

    "진심이 짓는다" e편한세상

    사진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주차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차 한대가 전부다.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이 사진엔 '주차 공간이 10cm 늘어났다'는 카피만 눈에 띈다. 톱스타도 없고 흔하디 흔한 CG처리도 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한 이 광고는 대림산업의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의 이미지 광고. '진심이 짓는다'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대림산업의 광고 캠페인은 광고가 방영되는 기간 '브랜드 선호도'와 '인지도'를 두 배 이상 증가시켰다. 특정 연예인의 얼굴보다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전면에 내세운 'e편한세상' 광고는 지난해 말 한 언론사가 광고대행사AE, 제작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톱스타들이 즐비한 타사 광고들을 제치고 '가장 선호하는 광고'로 선택됐고, 한국광고학회가 뽑은 '올해의 광고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는 등 광고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 2009년 7월부터 시작, 지난해까지 총 13편을 선보인 대림산업의 '진심이 짓는다' 캠페인 광고는 브랜드 선호도 및 인지도 면에서도 현격한 상승 효과를 거뒀다. 올해 초 부동산 114가 실시한 '2010년 아파트 브랜드 선호도 조사 결과'에서 'e편한세상'이 3위에 랭크된 것.

    이에 대해 부동산 114 측은 "소비자가 아파트를 인지하는 데에는 광고 모델이나 브랜드명 외에도 스토리텔링이 담긴 메시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결국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캠페인 광고가 역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은 가장 큰 이유는 스타가 아닌 '진심'이라는 화두를 내걸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안광호 한국광고학회장(인하대 경영학부 교수)은 "소비자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욕구와 가치 등을 읽어내 마음을 움직이는 광고가 바로 가장 좋은 광고"라고 밝힌 뒤 "그런 면에서 지난해 대상을 받은 'e편한세상' 광고는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에 온기를 불어넣고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는 아파트를 짓겠다는 '진심'을 잘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광고칼럼니스트 전준성씨도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e편한세상' 광고는 단순히 브랜드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아파트에 대해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있다"면서 "집을 짓는 사람들의 '진정성'이라는 부분에 공감을 하게 되면 광고가 끝난 후에도 머리 속에는 '10㎝'라는 유형의 메시지와 '진심'이라는 무형의 메시지가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부동산 열기가 식은 요즘, 아파트의 본래적 가치, 즉 '투자 목적'이 아닌 '주거 목적'이라는 근본적인 정체성을 'e편한세상'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일깨워줬다는 지적이다.

    ◆거품 뺀 '서민 광고'가 새 트랜드?

  • 광고업계에선 거품을 뺀 'e편한세상' 광고가 성공을 거둠에 따라 올해에도 빅모델이 아닌 독특한 컨셉트나 일반인을 내세운 '진심'을 강조하는 광고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란 카피를 유행시킨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의 경우 저렴한(?) 광고비로 대박을 기록한 대표적인 사례다. 천호식품의 광고 역시 톱스타 기용을 배제하고 투박하기 이를데 없는 CF를 내보냈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단돈 2000만원으로 제작된 이 광고는 4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견인, 일약 광고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일반인 사장이 지닌 촌스러움이 오히려 서민들에게 친근한 감정을 전달하며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동반 상승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킨 것.

    'e편한세상'의 캠페인 광고나 천호식품의 산수유 광고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시도로 큰 효과를 본 케이스. 그러나 시장에서 브랜딩이 구축되지 않은 상품이 평범한 모델과 컨셉트를 내세우는 건 사실상 모험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에 따라 스타 마케팅을 포기한 광고의 경우 시장의 흐름을 읽는 능력과 소비자들의 패턴을 분석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지도 쌓는 노력 대신 소비자 심리 파악에 주력

  • 광고대행사 TBWA코리아 이상규 홍보팀장은 "지난 수년간 다수의 건설사들이 각자 상징적인 톱스타를 기용, '아파트 브랜드'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여 온 결과, 지금은 웬만한 소비자들이 아파트 이름을 줄줄이 꿰찰 정도가 됐다"면서 "그런 면에서 이제는 과감히 빅모델 기용 방식에서 벗어나 아파트 자체를 알리는 분위기로 광고 트랜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제품의 경우, 보다 본질적인 부분을 어필하기가 훨씬 용이해진다는 게 이 팀장의 시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네임밸류가 있는 상품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의 기호를 무시한 광고는 시장에서 환영받을 수가 없다. 때문에 톱스타를 배제한 광고의 경우 소비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신선한 소재 발굴이 필수적이라는 지적.

    '10cm 광고'의 경우 비록 작은 문제지만 소비자들의 편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과감히 카피로 만들어졌고 결과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 이 팀장은 "'e편한세상' 광고는 화려하지만 비현실적이었던 아파트 광고를, 실소유자 위주의 현실적인 광고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해왔다"면서 "좋은 아파트를 만들려는 집단과 좋은 아파트에 살고자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순간이야말로 이 광고가 지양하는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영애·고소영·김태희, 줄줄히 낙마 왜?

  • 한 광고 대행사 관계자는 "소비자와의 거리감을 줄이고 공감대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A급 스타의 기용이 더이상 능사가 아니라는 시각이 팽배해 지고 있다"면서 "이같은 톱스타 기피 현상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경제 현실과도 맞물려 건설 분야에서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6개월 단기 계약에도 톱스타의 경우 5억 이상의 막대한 계약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들어 분양 물량이 절반 이상 줄어든 건설사로선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게 건설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B건설의 한 홍보 담당자는 "브랜드 이름이 충분히 알려진 아파트라면 '어떤 스타가 모델로 활동하는 아파트'라는 선입견보다는 '누구나 살고 싶은 아파트'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그런 면에서 요즘 트랜드는 소비자가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를 파악, 이를 적극적으로 광고에 활용하는 추세"라면서 "더욱이 톱스타가 광고에 등장하면 나와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이 느낌이 든다는 일부 고객들의 반응 역시 광고 트랜드를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액 계약금 부담‥비용 대비 효과에 의문

  • 실제 대우건설은 톱스타 김태희 대신 자체적으로 개발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정대우'를 '푸르지오'의 새 모델로 내세웠다. 지난 1월 말 김태희와의 계약을 종료한 대우건설은 타 건설사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것은 물론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연예인이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모델로 기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5년 동안 경남기업 '아너스빌'을 홍보했던 한류스타 배용준도 재계약에 실패했고 GS건설의 자이(Xi) 모델로 7년 간 활동해 온 이영애도 지난해 10월 하차를 통보 받았다. CF스타 고소영도 차이코프스키와 괴테에 밀려(?) 3년 간 활동했던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얼굴 역할을 내려놨다. 이미숙과 신민아를 앞세웠던 삼성물산의 '래미안' 광고도 계약 종료 이후엔 '새 얼굴'로 모델 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SK건설의 손예진은 이달 말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으나 역시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하다.

    단, 고소영의 남편 장동건은 앞으로도 포스코건설 '더 샵'의 홍보 모델로 계속 활동할 계획이다. 한 광고 대행사 관계자는 "톱스타 중에서도 장동건이 갖는 위상이 독보적이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됐다는 점이 오히려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잘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톱스타라면 아파트 광고를 찍어야 된다는 예기는 이미 옛말이 돼 버렸다"며 "이는 일부 스타들이 독점하고 있는 광고 시장에 대한 식상함이 광고업계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으며 연예인들이 가진 '신비감' 대신 '괴리감'이 광고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