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닥 상장사인 A 기업은 지난 5월 말부터 주가가 4배 가까이 치솟았다. 과거 지지부진했던 주가 흐름에 비하면 놀라운 반전이었다.
A 기업의 자회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에이즈(AIDS) 백신 임상시험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주가 급등의 원인이었다.
이상 징후를 포착한 한국거래소가 확인 작업에 나섰다. 거래소는 지난달부터 2차례에 걸쳐 A 기업에 주가가 급등한 배경을 설명하라며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A 기업은 다른 업체에 대한 공급 계약이 진행 중이라고 답했지만 주가 급등의 원인이 된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그러나 언론 등을 통해 FDA의 임상시험 승인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는 사이 인터넷에서는 `이달 말 임상시험 승인 결과가 나온다'거나 `임상시험 승인만 받으면 줄기세포를 능가하는 수익이 보장된다'는 식의 장밋빛 루머가 급속히 퍼졌다.
투자자들은 A 기업의 최근 주가 급등이 `대박'의 서막인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 돌리기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17일 "FDA에서 임상시험 승인을 내준다 하더라도 이후 거쳐야 할 단계가 많다. 에이즈 백신 개발은 다국적 제약회사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업인데 A 기업 주가가 너무 앞서나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대박' 루머…함부로 믿었다간 `쪽박'
기업의 주가를 띄울 호재성 루머가 인터넷에서 판을 치고 있다.
사실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소문만 믿고 투자에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지난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 제너비오믹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2009년 8월 방글라데시에서 최대 6조원 규모의 상ㆍ하수도 시스템 계약을 따냈다며 이에 대한 공시를 승인해달라고 거래소에 요청했다.
규모 면에서 볼 때 공시가 뜨기만 하면 단기간에 주가를 몇 배로 불릴 만한 폭발력이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거래소는 제너비오믹스가 근거 자료로 제시한 증빙서류를 신뢰할 수 없다며 공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재성 정보를 퍼뜨릴 기회를 놓친 제너비오믹스는 바로 인터넷으로 눈을 돌렸다.
공시로 내보내려 했던 내용을 인터넷 매체들에 흘렸다. 이는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급속히 퍼졌다. 호재성 정보의 공시를 막은 거래소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다.
그러나 장밋빛 루머는 결국 허위였을 뿐 아니라 `악마의 유혹'이었음이 드러났다.
하한가 행진을 거듭하던 제너비오믹스가 개미투자자들의 매수로 반등하며 하한가에서 풀려나자 주요 주주들이 재빨리 손을 털어버린 사실이 나중에 확인돼 검찰에 고발된 것이다.
제너비오믹스는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만 입힌 채 결국 지난해 3월 증시에서 퇴출됐다.
◇ 호재성 정보뒤에 작전세력 개입도
제너비오믹스의 사례에서 보듯 공시되지 않은 채 인터넷을 떠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들이 주가를 띄우기 위해 근거가 빈약한 정보를 인터넷에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기업들이 거래소 심사에 막혀 호재성 정보를 공시로 낼 수 없을 때 인터넷에 의존하게 된다. 정보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급속히 유통되는 인터넷의 속성도 이런 기업들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진다.
호재성 정보 뒤에 작전세력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업 경영진이 일부 주주들과 짜고 근거 없는 정보를 인터넷에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리고는 주식을 매도해 시세 차익을 거두는 것이다. 전형적인 `먹튀' 수법이다.
외국에서 자원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이런 사건들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글로웍스 대표가 2009년 몽골 금광 개발권을 따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려 주가를 띄우고는 수백억원의 차익을 거둔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이 사건의 경우 허위 정보가 공시로 뜬 것이어서 공시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거래소는 자원개발업체들이 호재성 정보를 공시하고자 할 때 당국의 인허가 자료를 제출하게 하는 등 심사를 강화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공시만큼은 투자자들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심사를 엄격히 하고 있다. 투자자들도 시중에 떠도는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기업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