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6000억원 유증, 주주배정 2조3000억원으로 축소나머지 1조3000억원, 한화에너지 등 3개사 제3자배정11조 투자계획 공개 … 올해 매출 30조, 영업익 3조 전망
  • ▲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사장 ⓒ뉴데일리
    ▲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사장 ⓒ뉴데일리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8일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방안을 전면 수정했다. 지난달 20일 국내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지 19일 만이다. 

    한화에어로는 당초 전액을 일반주주 대상 주주배정 방식으로 조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발표를 통해 2조3000억원은 기존 방식대로 진행하고, 나머지 1조3000억원은 한화에너지 등 계열 3사가 시가로 참여하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

    이번 결정은 단순한 구조 변경이 아닌 글로벌 방산 및 우주 산업 확대를 위한 전략적 자금 조달 성격이 짙다.유상증자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한화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병철 한화에어로 전략총괄 사장은 "(방산)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유상증자 논란을 통해 뼈저린 반성을 했다"면서 "앞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거듭 사과했다. 

    ◆ "지금 아니면 늦어"… 방산 수출 골든타임

    한화에어로가 유증 방향을 바꾼 가장 큰 배경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친다"는 인식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안병철 사장은 이날 '미래비전 설명회'에서 "이번 유상증자는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며 "글로벌 방산 수출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총 11조2000억원에 달하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구체화했다. 

    전체 투자금의 절반 이상인 6조3000억원은 해외 방산 투자에 투입된다. ▲동유럽 폴란드 등에 천무 유도탄 합작법인(JV) 설립 ▲사우디 국가방위부 JV투자 ▲미국 탄약 스마트팩토리 투자 ▲무인기 체계 및 엔진시설 구축 ▲유럽 유도탄·탄약·지상장비 거점 투자 등이다.  이중 조선·해양·에너지 분야에서도 해외 조선소투자(8000억원), 친환경 해운투자(3000억원) 등이 쓰일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호주에선 레드백 장갑차 현지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추진 중이고, 미국에서는 휠형 자주포 개발을 통해 미 육군 로데오 프로그램 참여를 준비 중이다. 폴란드에선 방산 MRO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도 진행 중이다.

    국내 방산 부문에는 2조3000억원이 투입된다. 구미·창원 등 생산기지의 스마트팩토리 전환, 자동화 설비 구축, 후방정비(MRO) 체계 고도화에 쓰일 예정이다. 기술개발(R&D) 부문에는 1조6000억 원을 배정해 AI 전투체계, 자율 무기 시스템, 정밀 타격 드론 등 차세대 플랫폼 확보에 집중한다. 항공우주분야에는 1조원을 투자해 위성체, 발사체, 추진체 내재화, 해상 발사 플랫폼 개발 등에 활용한다.


     "두산처럼 철회할 수 없다"… 금감원 정정 요구에 정면돌파

    한화에어로는 이날 올해 연간 실적 전망치를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안 사장은 "2025년 매출이 30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며 "환율, 수출단가, 생산성 등에서 긍정적 요소를 고려할 경우 추가 상향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가 지난달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보다 사업 내용과 시점을 한층 상세히 공개하고 연간 가이던스까지 공개한 데는 금융감독원의 '정정 신고서' 제출 요구가 적잖게 영향을 끼쳤다. 금감원은 지난달 27일 "(유상증자를 위한) 증권신고서 중 중요사항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두산로보틱스가 유상증자 및 합병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의 정정 요구와 시장 반발로 계획을 철회한 전례는 한화에어로에도 경고 신호로 작용했다.

    이에 한화에어로는 유증 방향을 수정해 일반 주주는 15% 할인율을 유지하고, 제 3자 배정에 참여하는 한화에너지 계열사는 시가로 참여하도록 했다. 또 1년간 매각을 제한하는 '락업 조항'을 설정해 대주주의 책임을 한층 강화했다. 
  • ▲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사장 ⓒ뉴데일리
    ▲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사장 ⓒ뉴데일리
    ◆ 이미 승계 완료 … 김동관 부회장에 불필요한 부담

    이번 유상증자는 시점상으로도 민감했다. 지난 2월 10일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3월 20일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승계용 유증'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3월 말 김승연 회장이 ㈜한화 지분 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하며 사실상 그룹 승계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시장의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일각에선 "주가를 낮춰 증여세를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는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된 김동관 부회장의 리더십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논란이 지속되자 회사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안병철 전략총괄 사장은 "한화오션 인수 당시, 한화에어로의 자본 여력이 부족해 계열사들과 함께 지분을 매입했다"면서 "(인수 단계부터) 향후 한화오션 지분을 되돌려 받는 구조로 설계했고 지난해부터 지분 매입 시점을 조율해 왔다"고 해명했다. 

    안 사장은 "시점 상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유상증자와 지분 증여는 별개의 결정이었다"면서 "국내 (승계 관련) 논란이 해외 고객이나 투자자에게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상증자 구조를 정비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6·3 대선 전 유상증자 마무리 의지

    오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하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기조에 따라 금융 정책이나 감독 당국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현재 진행 흐름 속에서 매듭짓는 것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화그룹을 향해 "유상증자로 주가가 떨어진 회사의 지분을 그룹 총수가 자녀에게 증여하기로 해 증여세를 절감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화에어로는 이달 중 금융당국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 이르면 4월 21~22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6월에는 예정대로 유증 절차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안 사장은 "이번 유증 구조 변경은 외부 비판을 피하기 위한 방어가 아니라, 투자 실기를 막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며 "앞으로는 공시 이후가 아니라, 공시 이전부터 시장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화오션 경영정상화에 따른 이익 증대, 글로벌 조선 경기 회복,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조선 및 해양방산 분야 한미 협업의 기대감 확대 등을 고려할 때 지분 매입의 적기로 판단했다"며 "성공적 증자와 공격적 투자 집행을 통한 당사의 기업가치 제고로 주주들의 신뢰에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주주가치 제고 밸류업에 대해서도 한화에어로 뿐만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도 많은 고민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