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은 회장의 할아버지는 공산당에 학살된 기업인 
      
     할아버지를 죽인 공산당의 괴수가 김정일인데,
    玄 회장은 할아버지의 원수이자 민족의 원수 屍身을 찾아가 문상한 셈이다. 

    趙甲濟   
     
     오늘 필자가 쓴 <구토증 나는 사진: 상복 입고 도살자 屍身(시신) 앞에 머리 숙인 두 여인>이란 글엔 '압구정동주'라는 필명을 가진 분의 댓글이 붙었다.
     
     <玄정은은 그의 祖父 玄俊鎬씨(德人이었다)가 6.25 북괴 남침 동란 중에 공산 赤徒에 銃殺 당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에 祖父를 虐殺한 원수에게 조문 경배한다니 悲憤慷慨(비분강개) 憤死할 일이 아닌가!쿼 바 디스 도미노!>
     
     nate 인물검색을 하니 玄俊鎬(현준호)씨에 대한 설명이 이러하였다.
     
     <생몰년 : 1889-1950. 전라남도 영암 출생. 아버지는 기봉(基奉)이다. 아버지의 유업을 받아 기업활동을 전개한 대기업가이며 사회활동가였다. 어릴 때 한학을 수학하였고 휘문의숙(徽文義塾)을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한국유학생회에 자주 참석하여 우의를 도모하고 불우한 고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20년 민족은행인 호남은행을 설립하여 전무 취체역에 취임하였고, 1925년 주주총회에서 제2대 은행장에 선임되었다. 전무를 겸임하면서 경영합리화에 주력하여 최대의 민족계 은행으로 부상하였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끊임없는 강압정책으로 동일은행(東一銀行)에 흡수, 합병된 뒤 모든 은행일과 결별하였다.
     
     1940년 경성방직공업주식회사 확장시 취체역에 취임하였으며, 도시제사 주주 등 주로 지방산업개발에 온힘을 기울였다. 학파농장(鶴坡農場)이외에는 자신의 기업체를 소유하지 않았다.
     한편, 육영사업에도 재산을 희사하여 보성전문학교 감사를 역임하였으며, 동아일보 창립 발기인과 1936년 동사의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설립위원장, 광주서중학교 및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의 핵심적 인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 조선이화학공업주식회사(朝鮮理化學工業株式會社)를 설립하여 초자(硝子) 제조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50년 9월 고향 영암에서 공비에 의하여 학살당하였다.>
     
     2006년 10월 동아일보는 玄貞恩 현대그룹 회장의 부친인 玄永源 현대상선 전 회장이 구기동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하였다. 향년 79세. 이 신문은 <고인은 호남 갑부인 현기봉 선생의 손자이자 호남은행을 설립한 현준호 선생의 장남으로 192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면서 <1948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1950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근무하면서 1951년 서울대 영문학과도 졸업했다. 이후 1964년 신한해운을 설립해 해운업에 뛰어들었다. 1984년 해운합리화조치로 회사가 현대상선에 편입된 뒤에도 현대상선 회장을 맡아 한국을 해운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보도하였다.
     
     故人은 故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울산에 조선소를 지을 때 조언을 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 인연을 계기로 정주영 창업주의 아들인 故 정몽헌과 현영원 전 회장의 딸인 현정은 씨가 결혼해 현대가(家)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영원의 장인은 全紡 회장이던 김용주였고, 김용주의 아들이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다.
     
     현정은 회장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호남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서 많은 德을 쌓았다. 그런 할아버지를 죽인 공산당의 괴수가 김정일인데, 손녀는 할아버지의 원수이자 민족의 원수 屍身을 찾아가 문상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