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6일 가칭 '안철수 재단'을 운영할 사람들이 드러났다.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고문이 재단 이사장을 맡기로 했다.
-
고성천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와 김영 ㈜사이넥스 대표, 윤연수 카이스트(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등이 이사를 맡을 예정이다. 이 중 고 부대표는 회계 분야를, 김 대표는 창업 분야, 윤 교수는 법률 분야, 윤 상임이사는 기부 분야를 맡는다고 한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할 조직이 있다. 바로 ‘삼일회계법인’이다.
'삼일회계법인' or '삼일PwC'
안철수 재단의 이사로 선임된 고성천 삼일회계법인 부대표가 회사에서 맡은 분야는 바로 ‘세금’이다. 삼일회계법인은 삼일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로도 불린다. 삼정KPMG, 딜로이트 안진, 언스트앤영과 함께 국내 4대 회계법인으로 불린다.
-
삼일회계법인은 창립 40년을 넘긴 거대 회계 법인이다. 1971년 3월 ‘라이부’라는 회계 법인으로 시작, 1973년 쿠퍼스&라이브랜드(Coopers & Lybrand) 회원사로 가입하고, 1977년 삼일회계법인으로 이름을 바꿨다.
1984년 부산 및 광주지점, 1985년 대구지점을 각각 설치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rice waterhouse Coopers)의 한국 네트워크 펌(Network Firm)으로 가입했다.
2002년 벤처기업 육성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4년에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 해에 영문 사명을 ‘Samil PricewaterhouseCoopers’로 바꿨다. 2006년에는 제7회 감사대상 회계법인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 ‘삼일미래재단’과 삼일경영연구원을 세웠다.
삼일회계법인의 주요 사업은 회계감사 및 관련 업무 외에도 세무 컨설팅, M&A 등 경영자문, 재무 컨설팅, 국제무역 및 투자자문 서비스 등이 있다. 2005년 7월부터는 향후 전 세계적으로 공통 적용될 IFRS(국제회계기준) 전담팀을 구성, 정부와 한국회계기준원이 추진하는 IFRS 도입 준비과정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실적과 규모 덕분에 국내 대기업은 물론 다양한 금융기관의 회계 감사 업무를 맡기도 한다. 하지만 규모가 큰 만큼 ‘그늘’ 또한 짙다.
안철수 재단에 ‘세금 회피’ 자문하는 삼일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은 최근 ‘안철수 재단’ 때문에 구설수를 타고 있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지난 13일 ‘안철수 원장이 1999년 발행한 BW(신주 인수권부 사채)를 헐값에 인수해 최대 700억 원의 이득을 취하면서 세금을 탈루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
아직 설립 전인 재단의 출연기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안철수 교수는 재단에 출연할 주식 18.6%(186만 주) 중 8.6%(86만주)는 매각 후 현금으로, 10%(100만주)는 현물로 기부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공익법인 설립을 위해서라고 해도 기업 발행주식의 5%를 넘는 지분 증여는 최대 60% 과세대상이 된다는 세법 조항이다. 이 조항에서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성실공익법인’ 지정을 받아야 하는데 설립도 하기 전인 공익법인을 지정한 사례가 없다.
참고로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려면 운영소득의 80%를 목적사업에 사용하고, 이사회의 1/5 이상을 특수 관계자로 둘 수 없다. 공인회계사 등 외부 감사를 두고, 전용계좌와 결산소득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5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지 2년이 지나야 한다.
때문에 ‘안철수 재단’의 이사로 선임된 고성천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의 역할이 무엇인지, 삼일회계법인이 다른 대안을 내놓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원순의 ‘아름다운 재단’,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도왔던 삼일회계법인
이처럼 ‘안철수 재단’의 독특한 설립 과정을 돕는 것으로 보이는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11월에는 ‘아름다운 재단’ 문제로 또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13일 ‘민족신문’ 김기백 대표는 아름다운 재단의 임원들을 불법모금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김 대표는 “지난 10년 간 928억 원의 기부금을 모집한 ‘아름다운 재단’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단 2차례(모금액 12억 원)를 제외하고 대부분 해당 내용을 서울시와 행안부에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단체나 개인이 기부금을 받거나 모금을 할 때 1,000만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이면 지자체에, 10억 원 이상이면 행안부에 기부금 내용을 등록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이에 ‘아름다운 재단’은 모두 합법이라고 주장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
이런 문제가 불거진 ‘아름다운 재단’의 이사 중 한 명이 안철수 교수이고, 감사가 삼일회계법인 김의형 부대표다. 김의형 부대표는 개인 자격으로 아름다운 재단을 돕는 게 아니다. 삼일회계법인은 자사 홈페이지에도 “삼일미래재단의 커뮤니티 리더십 팀은 사회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아름다운 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서 이사직을 맡음으로써 커뮤니티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과 관련된 ‘찝찝한(?) 일’은 또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다. 지난해 10월 10일 무소속 강용석 의원은 보도 자료를 통해 “아름다운 재단이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된 6개 회사로부터 6억1,500만 원을 기부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강 의원은 “삼일회계법인은 2009년 ‘아름다운 재단’에 2,000만 원을 기부했는데 그 전에도 후에도 기부한 적이 없다. 참고로 삼일회계법인은 외환은행 매각 당시 실사담당 회계법인으로 이강원 전 행장과 삼일 측이 외환은행의 부실 조작을 위해 여러 차례 논의한 사실이 관련 재판에서 당사자 증언으로 확인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이 지적한 ‘외환은행 매각’ 관련설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삼일회계법인은 ‘국내 4대 회계법인’은커녕 회계법인 이름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도덕성’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삼일회계법인에 대해 찾아보니 비슷한 문제가 더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사기’와 한화그룹 회장의 주식 장난
2011년 5월 9조 원대 금융사기인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뒤 외부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의 부실감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때 ‘삼일회계법인’의 이름도 자주 거론됐다.
-
2011년 8월 2일 김 정 의원은 “대형 회계법인의 저축은행 부실 감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김 의원은 자료를 통해 “2006년 이후 저축은행에 대한 대형 회계법인의 부실감사 건수는 삼일회계법인이 7건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가장 경미한 처분인 경고 1회와 지정제외점수 10점 감점의 처분 밖에 내리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 삼일회계법인은 금융감독기관의 '지정감사인'이 돼 부산저축은행 그룹 중 하나인 대전저축은행의 외부 감사를 맡았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대전저축은행은 부실 상태라 누구라도 '의견거절'을 내놓을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았던 프라임저축은행과 제일2저축은행은 별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지만 결국 영업정지를 당했다. 그 전에 전북저축은행과 으뜸저축은행의 부실을 가려내지 못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본연의 임무’인 회계감사 업무에서는 ‘심각한 실수’를 하는 삼일회계법인이었지만, 해외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는 데에는 열심이었다. 삼일회계법인은 2008년 6월 ‘Invest Review Cambodia’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향후 캄보디아는 급속한 경제성장 덕분에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예측과 ‘지금 캄보디아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 최고’라는 회계법인의 이 같은 ‘현지 투자 보고서’는 많은 기업들을 자극했다. 삼일회계법인의 투자자료 발표와 부산저축은행의 캄보디아 투자사기에 공모가 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묘하게도’ 비슷한 시기였다는 점은 눈길을 끌었다.
삼일회계법인의 ‘외도’는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 2011년 1월 검찰은 한화S&C 주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때 삼일회계법인의 파트너급 공인회계사 김 모 상무도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김 상무는 한화 측과 함께 한화S&C의 ‘주식가치 평가 보고서’를 허위로 만들어 제출했다고 한다.
안철수부터 저축은행까지…삼일회계법인 믿을 수 있나
이처럼 각종 부실과 불법행위에 연관됐던 삼일회계법인은 여전히 국내 1위의 회계법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본업 외에도 M&A 자문 등에서는 30~4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
삼일회계법인 측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언론에게 “저축은행 외부감사를 맡은 부서와 인수 자문을 하는 부서는 전혀 별개의 부서이기 때문에 이해상충이 있을 수 없다. 전혀 별건의 문제”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해당 언론은 ‘회계법인과 기업 간의 밀월관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삼일회계법인 외에 다른 회계법인들도 ‘실수’인지 ‘부도덕’인지 모를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상위 100대 기업 대부분은 삼일 등 ‘4대 회계법인’에게 외부감사와 각종 자문을 맡기고 있다. 이는 삼일회계법인 등이 글로벌 컨설팅 업체의 한국 파트너 펌(Firm)이 되면서 얻은 후광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삼일회계법인의 글로벌 파트너인 ‘PwC’는 153개국에 16만여 명의 회계사, 변호사 등을 통해 회계감사, 세무자문, 경영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425개 기업,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420개 기업에 서비스 중이다. 이런 ‘네임 밸류’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와 한화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사건, 아름다운 재단과 안철수 재단 사건을 보면서 ‘삼일회계법인=PwC’라고 생각해도 되는지 의문이 생긴다.
2001년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꼽히던 엔론이 분식회계 등을 저질러 파산하고, 이를 도왔던 세계 최대의 회계 법인이자 컨설팅 회사였던 ‘아더앤더슨’도 공중 분해됐다. 당시 ‘아더앤더슨 코리아’도 국내 5대 회계법인이었지만 문을 닫았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삼일회계법인 또한 긴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