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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국산차 브랜드들이 5월 판매실적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1, 2위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차가 아니라 3․4․5위인 쉐보레, 르노삼성, 쌍용차였다.
3위 기업 한국GM, 쉐보레로 선전한 지 2년…스스로 수입차라 생각하나
한국GM은 지난 5월에만 6만7,571대를 판매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내수판매는 1만3,005대, 수출은 5만4,566대였다. 완성차 외에 CKD(반조립 부품수출 방식) 수출까지 합치면 한국GM은 5월에만 19만 대 가까이 수출했다.
한국GM 측은 “3개월 연속 내수판매 1만 대를 넘었다”며 자랑했지만 전년 동월에 비해 4.9% 상승하는 데 그쳐 수출 성장세와 대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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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의 안쿠시 오로라(Ankush Aoroa) 부사장은 그럼에도 “한국GM은 시장 위축에도 불구하고 경차부터 스포츠카까지 풀 라인업, 뛰어난 제품 경쟁력, 브랜드에 대한 고객 신뢰 증가로 5월까지 탁월한 판매실적을 달성해 오고 있다”며 내수 판매에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오로라 부사장의 ‘자신감’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GM을 응원하던 고객들이 최근 들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쉐보레의 ‘페이스카’라는 콜벳 CO6 출시였다. 미국에서는 4만 달러대 후반인 ‘기본 콜벳’을 국내에 내놓으면서 8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내놓은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콜벳 중 고급형에 속하는 ‘그랜드 스포츠’와 맞먹는 가격이다.
그래도 GM은 다를 거라고 믿던 사람들은 2013년형 크루즈 가격을 보고선 기겁했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던 2.0 디젤의 최소 가격이 2,330만 원. 전년 보다 무려 200만 원 가까이 뛴 것이다. 여기다 기존의 1.6 가솔린 모델은 단종시키자 소비자들은 “자기네가 무슨 독일차인 줄 아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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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왜 우리 차가 안 팔릴까?” 소비자들 “정말 몰라?”
2005년 이후 내수 시장에서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하던 르노삼성은 2010년 한국GM에 밀난 뒤 계속 추락하는 모양새다.
르노삼성은 지난 1일 “5월 동안 총 1만2,373대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그 중 내수는 4,665대, 수출은 7,708대였다.
르노삼성차 영업본부장 이성석 전무는 이런 판매부진을 “불확실한 시장 상황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고객을 위한 프로모션, 판매조건 등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 런칭한 AS 브랜드 ‘오토솔루션’으로 만족도를 높이는 등 내수 시장 마케팅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르노삼성의 ‘다짐’에 시큰둥하다. 새로 시작했다는 AS서비스는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늦은 감이 있고, 신차들도 소비자들의 욕구에 모자란다는 평가가 많다.
소비자들은 지난 3월 “개성있는 젊은 층을 위한 차”라며 ‘SM3 보스(BOSE) 스페셜 버전’을 내놓자 황당해 했다. ‘SM3 보스 스페셜 에디션’에 달린 오디오는 기존의 국산차 오디오보다 약간 고급일 뿐 ‘최고’는 아니다. 게다가 SM3와 같은 준중형 차를 사는 사람이 ‘최고급 오디오’만 보고 수백만 원을 더 치를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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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르노삼성 측은 ‘문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4일에는 또 “30대 초반을 위해 ‘SM5 BOSE®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30대 초반을 위해 내놓은 ‘SM5 스페셜 에디션’의 가격은 2,185만 원(2.0리터급)부터 2,995만 원(2.5리터급)까지다. 오디오만 보고 3천만 원 이상을 지출할 30대가 고객이란다.
르노삼성은 앞서 지난 3일까지 열린 부산 모터쇼에도 2013년 출시할 전기차 ‘SM3 Z.E’와 르노의 F1 레이싱카, 이미 발표했던 컨셉카 '캡쳐(CAPTUR)' 정도 외에는 전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차량들만 내놔 부산 시민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을 실망시켰다.
배고팠던 쌍용차, 마힌드라 후원 업고 수출까지
한편 지난 4년 동안 ‘만년 5위’로 설움을 받던 쌍용차는 대주주 마힌드라의 후원에 힘입어 거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4월에 이어 5월에도 월 판매대수 1만 대를 넘어섰다. 특히 내수 판매는 4,104대로 르노삼성과 불과 500여 대 차이다.
쌍용차는 지난 1일 “5월 판매대수가 내수 4,104대, 수출 6,059대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쌍용차 측은 이 같은 실적이 ‘코란도 C’와 ‘코란도 스포츠’ 덕분이라고 밝혔다. 연비가 20.1km/l(2WD. 수동변속기 기준)에 달하는 ‘코란도C’와 지난 1월 출시된 ‘코란도스포츠’는 꾸준한 판매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부산모터쇼에 세계 최초로 선보인 ‘렉스턴 W’를 기다리는 소비자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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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측은 “최근 새로 출시되는 SUV 가격이 대부분 3천만 원대를 넘어서면서 2,700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렉스턴 W’에 대해 기대하는 것 같다”며 6월에는 판매가 더욱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도 러시아, 중남미에서의 판매 증가로 6,000대를 넘어섰다. 올 여름 인도에서 ‘렉스턴 W’가 팔리기 시작하면 수출 물량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인기 높아지는 쌍용차 vs. 불만 커지는 한국GM, 르노삼성의 차이
한 때는 최악의 AS, 비싼 부품값 등으로 외면 받던 쌍용차에 소비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반면 현대기아차의 대항마로 각광을 받았던 한국GM과 르노삼성이 추락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차이는 임직원의 ‘자세’로 보인다.
쌍용차는 2009년 노조원끼리 지게차까지 동원하는 극한 대립을 겪은 바 있다. 이런 대립을 일으킨 이유 중에는 판매부진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상하이기차’ 측의 ‘먹튀 문제’였다. 게다가 이 일에는 ‘권력’도 끼어 있었다. 결국 10년 넘게 서로 ‘형-동생’하던 이들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회사는 문을 닫을 뻔 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바닥을 경험한’ 쌍용차 임직원들은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재기를 노렸다. 정든 동료들을 내보낸 뒤 남은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임금을 깎고, 모두가 나서 “우리 차 사주세요”를 외치고 다녔다. 그 와중에도 “다른 회사 차 형편없어요”라는 ‘뒷담화 마케팅’ 보다는 “쌍용차가 그래도 SUV는 잘 만들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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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AS 네트워크도 상당 부분 정비했다. 심지어 군부대가 요청하면 서북도서까지 찾아가 예방정비를 해줬다. 이런 쌍용차 임직원들의 진심은 언론에도 통했다. 쌍용차가 2010년 ‘코란도C’를 내놨을 때 많은 자동차 매체와 동호인들이 애정 어린 격려와 비판, 관심을 보였다. 쌍용차를 다시 살린 것은 소비자를 감동시킨 임직원이었다.
반면 한국GM이나 르노삼성은 처음에는 소비자들에게 잘 하다 성장세가 지속되자 ‘내수시장 1위 업체 따라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늘 지적하는 ‘원가절감’ ‘인건비 상승’ 핑계도 그대로 따라한다.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이 원하는 건 1․2위 업체인 현대기아차가 망하는 게 아니다. 후발 기업들이 소비자를 위해 1․2위를 따라잡고 시장 질서를 회복하겠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지금 3위 업체 한국GM, 4위 업체 르노삼성이 쌍용차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서비스와 품질감성, 고객 대응태도를 고치지 못한다면 조만간 5위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