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신용등급 강등... 은행 대출 안해줘김 12장에 2천원... 재료는 백화점과 동일백화점․마트에선 같은 김이 10장에 3천원“8번 뒤집어 굽기로 ‘청결과 자부심’ 판다”
  • ▲ 시흥동 ‘즉석 김구이’ 강병재(54) 씨ⓒ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시흥동 ‘즉석 김구이’ 강병재(54) 씨ⓒ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현대시장. 대형시장은 아니지만 값싸고 물건 좋은 시장으로 꽤 유명하다. 

    인근 주민들은 근처 대형마트에 주차만 하고 가격이 저렴하고 신선한 제품이 많은 ‘현대시장’으로 올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단골들을 상대로 하는 만큼 맛좋고 질 좋은 음식이 아니면 바로 외면당한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생각이다. 천원짜리 한 장을 내더라도 신중을 기하는 게 소비자들이다.

    현대시장 초입 신발가게와 치킨가게 사이에 위치한 김구이가게는 이제 문을 연지 2년 남짓한 곳이다.

    제대로 된 간판은 보이질 않지만 인근에선 꽤 알려진 모양이다.

    “우리는 12장 든 한 봉지에 2000원을 받습니다. 롯데백화점이나 홈플러스, 농협 등에서는 같은 제품을 한 봉지에 10장 넣고 3000원 받고 있어요. 원재료는 동일한 도매업체에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품질은 같습니다. 수산업협동조합을 통해 좋은 김을 1년 단위로 계약해 들여오기 때문입니다.”

    이 곳 김에선 ‘바싹바싹’ 소리가 난다. 강씨는 김을 매일 직접 굽는다. 체온을 웃도는 폭염에 에어컨도 없는 상점에서 옥판에 불을 떼 굽는다. 1장 당 8번을 뒤집는다. 타지 않으면서 바삭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김을 구울 때 일반적으로 2번 정도 뒤집습니다. 저희는 8번을 뒤집어요. 투명한 옥판을 쓰기 때문에 김이 어느 정도 구워졌는데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구워요. 김을 태우면 맛도 안좋지만 건강에도 나쁘기 때문에 구울 때 신경을 많이 씁니다. 구이판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강 씨는 김 장사를 2년 전부터 시작했다. 이전에는 가전제품 설계엔지니어로 23년을 일했다. 그 분야에서 인정도 받고 자금도 마련해 가전설비 사업을 시작했다. 유명한 브랜드 아파트에 의무 장착이 결정되면서 안정되고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걱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시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악재가 찾아왔다.

    1997년 나라를 흔들었던 IMF 구제금융 시기. 강 씨도 이 어두운 그림자를 피하지 못했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으로 치닫자 아파트 공사가 지연됐다. 어음으로 원재료를 사고 제품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놓은 터였다. 납품만 하면 돈이 되던 기계들이 쓰레기가 돼 창고에 쌓여만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회사와 강 씨 사업체 사이에 있던 납품업체가 부도가 났다. 납품업체에서 받은 어음은 휴지조각이 됐다. 강 씨의 빚은 늘어만 갔고 신용등급도 추락했다.

    하지만 그는 'IMF 위기로 고비를 맞은 사람이 나 하나뿐이냐'며 웃어보인다.

    “엔지니어 경력을 살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고급 아파트에 설치하는 주방용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납품했어요. IMF전에는 호시절이었죠. IMF 사태가 닥치면서 3개월 동안 어음만 쌓였어요. 갚아야 하는데 수중에 돈이 없어 회복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빚만 갚았어요. 신용등급도 떨어졌고요. 하지만 모두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IMF 사태 때 어렵지 않았던 사람도 있습니까? 본인의 잘못에 의해서 망가는 경우도 있고 남에 의해서 어려운 경우도 있죠. 안 좋은 일 일수록 빨리 털어내야 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재기해야죠.”

    강 씨는 힘든 시절의 이야기를 짧게 접는다. 강 씨는 엔지니어로 23년간을 일한 만큼 업계의 러브콜도 여러 번 받았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작은 회사의 임원급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 재취업을 한다면 당장의 수입은 보장되지만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민 끝에 장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지인이 김구이 기계를 제조하고 있어 아이템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직장 제의를 받고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2~3년, 길어야 5년 더 일한 수 있을 텐데..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이 됐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리를 잡아놓는 것인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 강병재 씨는 김의 바삭함을 높이기 위해 한장당 8번씩 뒤집는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강병재 씨는 김의 바삭함을 높이기 위해 한장당 8번씩 뒤집는다.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여유자금이 없고 신용도 떨어진 터라 최소 자금으로 가게를 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금천구 시흥동 현대시장 안에 자투리 공간을 개조한 공간이 났다. 

    보증금 300만원, 권리금 800만원으로, 시장 내 다른 상점의 20%도 안되는 자금만 있으면 됐다. 이후 기계 구입비 570만원과 냉장고 등을 구입하는데 1천700만원이 필요했다. 수중에는 1천200만원이 있었다.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갔지만 거절당했고 ‘서민금융’이라고 해서 찾아간 햇살론은 이율이 8%에 달했다.

    “햇살론에서는 2천만원까지 대출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율이 8%에 달했습니다. 부담이 돼서 대출받는 것을 포기했어요. 매달 나가는 이자가 자영업자들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몇군데 상담을 받고 조금 적은 금액이라도 4%대 이율로 미소금융을 이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초기투자를 적게 잡아 인테리어도 하지 못하고 웬만한 전기설비는 혼자 설치했습니다. 예산을 최소화 했습니다.”

    그러던 중 가게 위층에 SK미소금융 금천지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올라가 상담을 받았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서류검사와 현장을 살펴보더니 500만원을 대출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마련한 1,700만원으로 김구이 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름비수기에는 김매출이 겨울보다 좋지 않자 품목을 다양화하기 위해 오징어, 쥐포구이를 추가했다. 여기에도 투자금이 필요해 SK미소금융 금천지부에 추가 대출을 문의했더니 500만원을 대출해주었다.

    “2010년 9월 가게를 열 때도 500만원 대출을 받아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작년 여름에 매출이 떨어져 고민했는데 미소금융에서 추가로 500만원을 대출해주기로 해서 단품판매의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작지만 가게도 확장하게 됐고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을 아니지만 매출도 안정권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강 씨의 김 가게 창업 스토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떠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