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등에서 ‘햇살론’ 받으면 ‘일반 신용대출’ 반영돼 ‘등급’ 하락제2금융, 신평사 “걸러낼 방법 없다”…금융위 “서민 꼬리표 안 붙이려”
  •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서민금융’ 정책. 덕분에 수만 명이 넘는 서민들의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심각한 부작용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햇살론’ 잘못 받으니 신용등급 하락

    정부의 ‘서민금융’ 정책에는 ‘햇살론’ ‘바꿔드림론’ ‘새희망홀씨대출’ ‘미소금융’ 등이 있다. 그 중 문제는 ‘햇살론’이다.

    ‘햇살론’은 연 소득 2,600만 원 미만의 저소득자나 연봉 4,000만 원 미만이지만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권이나 캐피탈과 거래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생계자금 등을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대출금의 95%까지 신용보증재단이 보증해주고, 신협, 새마을금고, 농협, 저축은행 등이 자금을 빌려준다. 덕분에 저신용자와 저소득자들은 연 30% 이상의 고리대출 대신 연 10%대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 ▲ 햇살론 홈페이지. 아래 협약기관 중 대출을 거절하는 곳도 많다.
    ▲ 햇살론 홈페이지. 아래 협약기관 중 대출을 거절하는 곳도 많다.

    하지만 저축은행 등에서 ‘햇살론’을 받을 경우 ‘일반 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분류돼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제1금융권이나 카드사, 캐피탈(할부금융)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신용등급으로 상승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되는 원인은 ‘신용등급’을 평가하고 반영하는 시스템에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신용평가회사’가 개인금융거래 정보를 토대로 산출한 ‘신용등급’을 신용거래의 기초자료로 사용한다. 여기에는 재직 중인 회사의 규모, 재직기간, 연 소득 등 다양한 요소가 적용된다. 신용등급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거래 내역’이다.

    ‘금융거래 내역’을 평가하는 기준은 엄격한 편이다. 카드론, 현금서비스를 받았거나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등과 거래한 내역이 있으면 신용등급이 크게 떨어진다. 불과 2년 전에는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가능여부’를 확인만 해도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이러니 저축은행 등에서 ‘서민금융’을 받으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저축은행에서 받은 ‘햇살론’ 때문에 1톤 트럭 할부구입 거절

    신용등급 하락은 영세 자영업자가 1톤 트럭을 할부로 구입하려 했다 거절당하고, 소규모 가게를 차리려는 사람이 ‘자영업자를 위한 신용카드’를 발급 받으려 했다 거절당하는 일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국내 1~2위를 다투는 A카드사, B캐피탈에 문의했다. 두 회사가 거의 같은 답변을 해왔다.

    “우리 회사는 ‘햇살론’을 받았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분들을 걸러내는 기능 자체가 없다.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참고로 해 내부평가요소와 함께 평가할 뿐이다. 하지만 ‘햇살론’을 빌리면 일반대출과 같이 ‘기록’이 남는다. ‘햇살론’이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에서 받은 대출이다 보니 저신용자 대출이 많은 것으로 판단돼 신용에는 악영향을 준다.

    카드 발급 자격이나 신차 할부구입 등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평가요소가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신용등급이 낮다고 해도 본인 소유의 임대 부동산이 있어 안정적인 소득이 있거나 자산이 많으면 가능하다.

    ‘햇살론’을 받은 분들이 신차할부나 카드발급을 거절 당하는 것은 소득이 낮고 자산이 적은데다 대출금액이 많은 게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것 같다. 게다가 다른 곳은 몰라도 ‘저축은행’에서 일반대출을 받았다는 기록이 신용평가에 일괄 적용되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게 아무래도 그 분들이 신차 할부구입을 하거나 카드발급을 받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다.”

  • ▲ 햇살론은 연 소득 2,600만 원 이하이거나 연 소득 4,000만 원 이하이면서 신용등급 6등급 이하면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신용등급은 신용평가사의 등급이 아니라 신용보증재단에서 평가하는 등급이다.
    ▲ 햇살론은 연 소득 2,600만 원 이하이거나 연 소득 4,000만 원 이하이면서 신용등급 6등급 이하면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신용등급은 신용평가사의 등급이 아니라 신용보증재단에서 평가하는 등급이다.


    신용평가회사들 “현장에서 ‘햇살론’ 대출자 구제하자 건의도”

    신용평가회사들은 ‘햇살론’ 대출자들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없는 걸까. 국내 최대의 신용평가회사인 N사와 K사에 문의했다. N사와 K사 모두 “서민금융 대상자라고 별도로 표시하거나 불이익, 또는 우대는 없다”고 답했다.

    “신용평가는 사람이 수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평가요소들을 측정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점수로 환산하는 것이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햇살론’이나 서민금융 지원 대상자를 위한 항목은 따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용평가라는 것이 금융거래에서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대로 평가요소를 정하거나 바꾸기 어렵다. 지금까지 ‘햇살론’이나 ‘새희망홀씨대출’ 같은 서민금융을 별도의 요소로 정하라는 정부나 감독기관의 지침이 없었다.”

    K사는 현장 책임자에게 상황을 상세히 확인하더니 “문제가 있다”는 답을 해왔다.

    “문의한 대로 현장에서는 ‘햇살론’ 등을 받았다가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현장 담당자들이 이런 부작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당국에 건의할 자료를 모으고 있다고 알려왔다. 이런 일은 우리도 생각 못했다. 우리 생각에도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햇살론’ 대출의 95%까지 보증해주는 ‘신용보증재단’ 측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거의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담당자의 말이다.

    “‘햇살론’을 받아서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사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한테까지 알려지는 일이 드물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햇살론’ 대출을 보증해주고는 있지만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감독권한이나 감시기능이 전혀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보증’만 해줄 뿐이다.”

    신용보증재단은 일선 금융기관들이 '협약'은 맺어놓고도 '햇살론' 대출을 거절하는 것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무력함을 나타냈다.

    정부 “서민금융 받았다는 이유로 불이익 당할까 걱정”

    금융기관들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일 하면서 그 사이에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국은 어떤 생각일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했다.

    ‘햇살론’과 같은 서민금융을 받은 게 오히려 ‘낙인’이 돼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돼 ‘일반대출’처럼 평가요소로 반영하게 된 것이라며 “이런 부작용은 예상 못 했다”고 답했다.

    “사실 ‘햇살론’ 대출을 받은 분들 대부분이 저신용자에 저소득자다. 자산도 별로 없다. 이런 분들이 만약 금융기록 상에 ‘서민금융 대출’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게 되면 금융기관들이 ‘아, 저 사람은 정부 지원으로 받아 금융거래를 했구나’라며 나중에 신용거래를 거절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햇살론’이든 ‘새희망홀씨대출’이든 영구적인 정책이 아니라 5년 한시적인 것이다. 정부에서는 ‘서민지원’을 일반 신용거래로 취급하면 금융기관들이 차별하지 않을 것이고, 지원받은 분들이 신용도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은행과의 신용거래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가 일어나는 건 ‘저축은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반영되지 않나 하는 의견도 내놨다.

    “지난해 저축은행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나면서 저축은행의 신용도가 급락했다. 그러다보니 저축은행과 거래하는 분들을 보는 평가도 덩달아 낮아진 것 같다. 일단 지적한 내용에 대해 검토하겠다.”


  • ▲ 정부가 설계한 서민금융의 구조. 멋진 구조다. 하지만 그 실행과 부작용을 검증하는 일은 별개다.
    ▲ 정부가 설계한 서민금융의 구조. 멋진 구조다. 하지만 그 실행과 부작용을 검증하는 일은 별개다.


    ‘서민금융’ 정책 설계․실행에 ‘진짜 서민’은 빠졌다?

    카드사, 캐피탈, 신용평가회사, 신용보증재단, 금융위원회,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햇살론’을 둘러싼 관계 기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 중 한 곳을 찍어 ‘책임지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생겼다.

    궁금했다. 이들이 서민금융 정책을 설계할 때 과연 ‘서민’도 자리를 함께 했을까.

    정부의 ‘서민금융정책’ 중 급여생활자를 위한 것으로는 ‘햇살론’과 ‘새희망홀씨대출’이 있다. 이를 거꾸로 살펴보면 ‘시중은행과 신용거래를 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알 수 있다. ‘햇살론’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새희망홀씨대출’은 신용등급 5등급 이하부터 받을 수 있다.

    사실 신용등급 5등급부터는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기가 어렵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보험사나 캐피탈, 카드사에서 자금을 융통한다고 해도 금리가 만만치 않다. 연봉이 낮거나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신협,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등을 찾게 되는데 여기서 대출하면 금리가 시중은행의 두 배 이상이다. 신용등급까지 떨어진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들은 신용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적 약자’다. 지금의 ‘서민금융 정책’은 잘못하면 이들에게 ‘성장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자랄 수 없도록 하는 ‘유리 천장’처럼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자영업자’ 위주의 서민금융정책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8월 13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간부회의에서 이렇게 지시했다고 한다.

    “영세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보증비율 100%의 햇살론 특례보증을 검토하라.”

    자영업자 지원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1,700만 ‘급여생활자’ 중에도 ‘서민’은 많다. 특히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2030세대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월세 보증금 등이 필요할 텐데, 나이 든 중소기업 직원들은 여러 가지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텐데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서민금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중은행의 장벽이 높은 데다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 직원, 새로 사회에 나서는 이들을 위한 ‘금융지원’ 자체가 없으니 2030세대가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