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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괴동동에 위치한 포스코의 본진 포항제철소. '대한민국 철강 생산 1번지'로 불리는 만큼 포스코 본사는 회색빛에 가려있고, 시끄러울 것만 같았다. 기자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곳은 '외유내강(鋼)' 4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다.
지난 6일 기자는 포항제철소 내 제1열연공장을 방문했다. 당일 현지 날씨는 봄기운이 물씬 묻어났고,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포항에는 포스코 외에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다수의 철강업체 공장이 들어서있다. 그만큼 굴뚝도 많아, 뿌연 연기들이 공기를 뒤덮지 않을까 싶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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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했다. 포스코 측의 '공원 속의 제철소', '숲속의 제철소'를 만들겠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는 수목원인지, 철을 만드는 공장인지 헷갈릴 정도다. 공장 주변에 온갖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포스코 관계자에 따르면 공장에 4분의 1이 녹지대라 한다.
원료공장 주변 도로 곳곳엔 물기가 머금어져 있었다. 분진 등 미세먼지 발생을 최소화한 것이다. 이에 사용되는 물 역시 공장 내에서 재활용되는 것으로, 자원낭비도 없는 편이다.
이러한 외유(外柔)에도 공장 안은 내강(內鋼)이었다. 제철소 외관을 한 바퀴 둘러본 기자는 포항제철소 제 1열연공장(No.1 Hot Strip Mill)에 들어섰다. 열연공장은 제선·제강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중간재 '슬라브'를 엿가락처럼 늘려 둥글게 마는 곳이다. 고작 출입문 하나를 사이에 뒀을 뿐인데 공기가 바뀌었다. 후끈한 열기가 코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흔히 TV나 잡지 등에서 제철소가 소개 될 때 나오는 시뻘겋게 달궈진 직사각형의 철판이 눈 앞에 등장했다. '지옥에서 만들어진 양갱'과 같다고나 할까, 여튼 이 슬라브는 800도가 넘는데 쳐다만 봐도 몸이 녹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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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연공장에서는 포스코 만의 '연연속 압연 기술(Continuous Hot Rolling)'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은 슬라브를 1차로 압연한 바(bar)의 앞뒤 양 끝을 접합해 연속적으로 압연하고, 권취기 입측에서 접합한 부분을 잘라 코일 상태로 감아준다. 종전 압연 공정에 비해 작업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생산성과 품질이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 일반 열연 공정보다 더 단단하고 얇은 강판을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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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소 열연부는 지난해 10월 25일 슬라브 95매를 쉬지 않고 연연속 압연하는 데 성공했다. 종전 기록인 80매를 뛰어넘는 신기록으로, 95매를 길이로 합산하면 총 98㎞에 달한다. 2시간 8분 동안 쉬지 않고 한 번에 생산한 셈이다.
포항제철소 정문에는 故박태준 초대회장이 남긴 '자원은 유한·창의는 무한'이란 말이 커다랗게 쓰여 있다. 겉으로는 제철소답지 않게 고요했고 과장 섞어 여유로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각 공장 내부는 그 어느 곳보다 굳세고 뜨거웠다. 아마도 한정된 자원으로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해, '더 월드 베스트, 포스코'라는 타이틀을 지키겠다는 임직원들의 열의(熱意) 덕일 터.
포스코는 지난해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로 선정됐다. 2010년 이후 6차례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악화된 업계 상황 속에서도 포스코가 '외유내강(鋼)'의 자세를 잊지만 않는다면, 10차례·50차례 연속 '철강왕조실록'을 써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